解明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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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아니라 '책임'이다 단상

시게마쓰 기요시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파랑새>의 한 장면(다음 영화)

"노구치는 너희들을 잊지 않아. 평생 못 잊을 거다. 원망할지 즈즈, 증오할지, 용서할지는 모르지만, 평생, 저, 저저저, 절대로 잊지 않는다."

"……네."

귀가 멍해졌다. 코와 눈이 맞붙은 저 깊은 곳이 저린 듯 뜨거워지면서 많이 더듬어야 할 선생님의 말이 이때부터는 거짓말처럼 막힘없이 귀로 흘러 들어왔다.

너희들은 노구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짓을 했다. 그런데 너희가 그것을 잊는다는 건 비겁한 일이겠지? 불공평하겠지? 노구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노구치에게 한 짓을 잊어서는 안 된다. 평생. 그것이 책임이라는 거다. 벌이 있든 없든, 죄가 되든 안 되든, 자신이 한 일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우리는 반성했다. 후회도 했다. 본인에게 건네지는 못했지만 반성문 속에서도, 마음속으로도 노구치에게 수없이 사과했다. 하지만 그것은 '책임'과는 다른 것일지 모른다. 잊지 말라고 선생님은 되풀이했다. 노구치 일을 잊지 마라. 자신이 한 일을 잊지 마라.
- 시게마츠 기요시[重松清]의 「파랑새(青い鳥)」에서

'이지메' 문제를 다룬 일본 소설들을 읽으면, 작품에 따라서 이것은 은유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교육 문제를 다뤘으나, 교육 문제를 넘어서 일본 사회 자체를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지요. 시게마쓰 기요시 작가의 연작 소설집 『파랑새』(국내에는 '말더듬이 선생님'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에 실린 동명의 단편 소설 「파랑새」에서 주인공인 무라우치 선생은 '이지메' 가해자인 히가시가오카 중학교 2학년 1반 아이들을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잊어버리다니 비겁하구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마치 현재 일본 사회를 겨눈 듯합니다. 이미 사과했으니까 옛일은 옛일일 뿐이라는 식의 태도를 나타내는 많은 일본인과 소설 속에서 잘못을 반성하는 시늉만 내는 2학년 1반 아이들은 얼마나 다를까요?

무라우치 선생은 2학년 1반 아이들에게 '이지메' 피해자인 노구치에게 저지른 짓을 평생 잊지 않는 게 '책임'이라고 가르칩니다. 소설에서 서술자로 등장하는 소노베는 무라우치 선생의 가르침을 가까스로 이해합니다. 자살을 시도하고서 학교를 떠난 노구치를 계속 떠올리게 하는 무라우치 선생에게 반발하던 이노우에도 자기 '책임'을 받아들이지요. 적어도 소설에서는 '책임'을 저버리는 아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파랑새>는 적잖은 아이가 마지막까지 '책임'을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장면을 집어넣어서 좀 더 현실적인 결말을 보여 줬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일본 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옛일을 잊지 말라고 끊임없이 일깨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은 돈이나 말로 비겨 없앨 만큼 가볍지 않으니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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