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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산 땅굴 이야기 역사


달포 전에 궁산 땅굴 역사 전시관을 1년여 만에 다녀왔습니다. 내부 관람이 제한되었지만, 그사이에 혹시 뭔가 바뀐 게 있을까 싶어서 다시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옛날에 다녀왔을 때와 달리 전시관에 문화 해설사와 자원봉사자가 있어서 궁산 땅굴과 관련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10분 넘게 들을 수 있었기에 보람되고 좋았습니다.

식민지 시기에 만들어진 궁산 땅굴의 모습(연합뉴스)

지난해에 궁산 땅굴 전시관을 찾았을 때 제가 가장 궁금하게 여긴 부분은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강서구청에서 땅굴을 관리하였음에도 2008년에 땅굴을 '발견'하였다고 새삼스럽게 홍보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관련 글). 자원봉사자에게 이것을 여쭤보니까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구청에서 관리하던 곳은 '입구'였고, 당시에는 '출구'가 어디인지 찾지 못하였는데, 주민들의 증언을 근거로 삼아서 조사한 끝에 '출구'를 찾아낸 때가 2008년이었다고 답했습니다. 현재 폐쇄된 '입구'와 궁산 땅굴 전시관으로 쓰이는 '출구' 사이가 직선거리로 100m가 채 되지 않는데, '입구'와 '출구'를 다시 잇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그리고 1980년대에 폐쇄되기 전까지 땅굴에 얽힌 사연도 들었습니다. 자원봉사자가 제게 들려준 말에 따르면, 주민들이 버섯을 키우는 데 쓸 나무를 갈무리하였다거나 어린이들이 숨바꼭질하려고 땅굴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현재 폐쇄된 '입구'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집에서 나고 자란 분은 어렸을 때 땅굴을 자주 들락날락하면서 놀았다고 증언하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빈민들뿐만 아니라 무속인들도 땅굴에 만들어진 탄약고 등에서 한동안 머물면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렇게 강서구 주민들이 말한 내용을 글로 엮어서 구술사로 다뤄도 일제가 이 땅에 남긴 어두운 유산인 궁산 땅굴을 둘러싼 이야기가 좀 더 풍부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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