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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사이비 역사학 역사

잡지 『자유』는 군인들에게 사이비 역사학을 전파하던 통로가 되었다(신동아)

내가 편수관으로 문교부에 몸담았던 1980년은 교육과정 개정 주기에 따라 제4차 교육과정 개정 작업이 시작되던 때이다. 이와 아울러 새 교육과정 개정과 새정부 출범에 맞추어 국사교과서 개정 작업도 진행되었다. 원래는 새 교육과정이 고시된 뒤 이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서 개정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 때는 사용하고 있던 국사교과서에 대해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었고 새 정부의 정책의지를 반영하기 위해서도 국사교과서 개정 작업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라 교육과정 개정 작업과 동시에 교과서 개정도 진행하였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안호상 박사를 비롯한 재야학자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교과서에 반영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강력한 공세를 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그 동안 학생과 군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끊임없이 강연회를 개최하고 책자를 보급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자기들의 학설에 대한 상당한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특히 재야학자들의 기관지처럼 되어 있던 박창암 장군이 발행하는 『자유지』가 군인들의 정훈 교재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군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상당히 컸다. 더욱이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심정적으로 재야학자의 학설에 동조하고 있던 젊은 영관급 장교들이 정부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문교부에 유형·무형으로 압력을 가해 왔다. 이러한 압력은 나에게 집중되었는데, 주로 방문 항의, 다수인을 동원한 민원 제기, 정계 인사를 통한 압력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이 가운데 5공 정부의 실력자들인 영관 장교들은 장관에게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하루는 아침에 출근했더니 장관 비서실에서 장관이 찾는다는 전화 연락이 왔다. 바로 장관실에 갔더니 이규호 장관이 두 장의 명함을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제 국방부에 있는 이 사람들이 찾아와 국사교과서 내용에 대해 많은 의견을 주고 갔는데 마침 윤 편수관이 출장중이라 이들과 만나지 못하였으니 오늘 직접 찾아가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겠소. 그 사람들 보니 상당히 공부도 하였고 나름대로 상당한 논리와 설득력을 가지고 있던데 만난 뒤에 결과를 보고해 주었으면 좋겠소."

나는 기분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장관의 말씀이니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장관실을 나왔다. 이들은 국방부 소속의 육군중령으로 만나 본 뒤에 알았지만 두 사람 모두 위탁교육으로 서울대를 나오고 대만에 유학하여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엘리트 군인이었다.

나는 전화로 약속을 하고 국방부 휴게실에서 이들과 만났다. 그들은,

"국사교과서는 국민들에게 민족의식과 민족적 자부심, 긍지를 심어 주는 민족 경전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국사교과서 내용은 학문적으로 정리되지 않고 입증할 수 없는 내용이더라도 국민 교육용으로 필요하다면 수록하여야 한다. 구약성경 내용은 믿을 수 없는 내용도 많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이것을 자기들의 고대 역사 교과서로 활용하고 있다"

며 재야측 주장을 국사교과서에 수록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나는,

"물론 국사교과서가 국민교육에 미치는 중요한 영향을 알고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국사교과서는 단순한 학문적인 내용보다 역사교육이란 측면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도 학문이요 과학인데, 국민교육이란 미명하에 학문적 연구도 미흡하고 확증적인 자료도 없는 내용을 교과서에 수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 재야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 가운데는 사료비판이나 고고학 등의 뒷받침이 없어 학계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이러한 내용들은 앞으로 학계의 연구성과에 의해 이것이 학계에서 정설화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과서이기에 재야 측의 주장 등도 충분히 연구 검토하여 수용 가능한 내용은 수록토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그래서 지금 개발하는 국사교과서 내용이 현행 교과서보다 좀더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서술이 되도록 하겠다"

라고 평상시 내가 가지고 있던 소신을 피력하였다.

이러한 대화는 2시간 여나 계속되었다. 일부 재야측 인사들처럼 자기 주장만 내세우지 않고 비교적 차분하게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분위기였다. 이들은 역사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우리 나라 역사에 대한 강한 애정과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또 한 번은 문교부에 출입하는 보안사 직원의 소개로 보안사 소속의 대령이 시간을 내 달라고 해서 만나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주장 역시 앞서 만난 국방부 소속의 장교와 같은 것이어서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러한 유형·무형의 압력이 나를 상당히 정신적으로 괴롭혔지만 나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였다.
- 윤종영의 『국사교과서 파동』에서

1970년대부터 세력을 차츰 넓히기 시작한 사이비 역사학이 군대를 집중하여 공략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사이비 역사학을 대변하는 잡지나 다름없던 『자유』를 발행하던 박창암(朴蒼巖)이 장성 출신이라서 군대와 연이 닿기 쉬웠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리고 닫힌 사회가 되기에 십상인 군대의 특성을 사이비 역사학자들이 이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민방위 훈련에 가니까 『환단고기』나 『단기고사』를 소개하는 강사를 만났다는 웃지 못할 경험담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하지 않았을까요?

앞서 인용한 윤종영 씨의 회고는 사이비 역사학에 물든 군인들이 어떠했는지 아주 잘 보여 주는 일화입니다. "국사 교과서 내용은 학문적으로 정리되지 않고 입증할 수 없는 내용이더라도 국민 교육용으로 필요하다면 수록하여야 한다"라는 말은 왜 사이비 역사학이 어엿한 학문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지 스스로 밝히는 듯합니다. 그나마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늘어놓은 이들이 웬만큼 말이 통하는 편이었다고 하니까 더욱 황당할 따름입니다.

덧글

  • ㅇㅇ 2019/11/07 09:35 # 삭제 답글

    남이 써놓은책 베끼는 거 말고 포스팅할 거리가 없으면 블로그 접으시지
  • 解明 2019/11/07 09:48 #

    싫은데요.
  • 2019/11/09 00:3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11/09 23:2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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