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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망루의 결사대> 속 언어 위계 질서 언어

영화 <망루의 결사대> 속 한 장면(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또한 일본어도 이 마을의 공식 언어로서 주민들을 서열화한다. 주재소와 학교 곳곳에 붙어 있는 '국어 상용'이라는 표어는 도리어 주민들이 아직 국어를 상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리고 주재소에서 열린 주민 좌담회에서 칠판에 한글과 일어(한자)가 병기된 것이나 경찰관들이 스파이의 행방을 찾아 조선인 주민들을 탐문할 때도 통역이 필요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역설적으로 이 마을의 일본인 경관에게 조선어와 한글은 의사소통을 하는 데 필수적인 언어이다.

<집 없는 천사>의 경우 비공식 언어인 조선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문부성 추천이 취소되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망루의 결사대>는 조선어가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는데도 문제없이 공개되었다. 그 이유는 <망루의 결사대>의 시간적 배경이 내설일체와 일본식 성명 강요 정책이 실시되기 전인 1935년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설정은 논리적으로 영화가 제작된 현 시점(1943년)에는 동화가 더욱 진전되었다는 가정을 가능하게 한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1937년으로 설정되었던 시간적 배경을 1935년으로 앞당긴 것도, 중일전쟁 이전이라면 이중 언어 상황이 용납될 수 있다는 제작사나 검열관의 계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집 없는 천사>에서는 황국신민서사를 제창하는 라스트 신에서만 일본어가 두드러진 데 비해, <망루의 결사대>에서는 일본어가 다른 모든 언어를 제압하고 서열 제1위를 확고히 장악하고 있다. 조선어와 중국어는 단지 등장인물들의 신분(identity)을 나타내는 코드로 이용되었을 뿐이다.

<망루의 결사대>에 드러난 언어적 위계질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공식 언어로서 권력을 가진 일본어는 일본인, 조선인 중간 관리자(순사), 엘리트(교사, 의학생)가 사용한다. 그리고 조선인 주민의 상용어인 조선어는 외국어라기보다는 대동아공영권의 향토색 넘치는 방언으로 표상된다. '총각'이니 '떡국' 같이 일본어에 섞여 쓰이는 조선어는 도라지타령과 어깨춤처럼 일본인의 이국 취향을 만족시켜 주는 선에 한정된다. 한편, <망루의 결사대>에서 중국어는 가장 타자화된 언어로, 주로 스파이의 정체를 드러내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의 중국인 역을 전부 일본인 배우가 연기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중국인에 대해 노골적인 흑색선전을 펼치는 이 영화에 출연할 중국인 배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인 배우가 일부러 서투른 일본어(주로 조사를 전부 뺀)를 쓰며 중국인을 연기하는데, 그 때문에 왕호가 왕룡의 반점으로 숨어든 장면에서처럼 중국인 부자가 일본어로 말다툼을 하는 개연성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만다.

이상과 같이 <망루의 결사대>에는 일본인을 최고위에, 일본어가 서툰 중국인을 최하위에 두고 그 사이에 일본어가 유창한 조선인 친일파를 위치시키는 언어의 위계질서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같은 서열화는 어디까지나 가정에 지나지 않았다. 이마이 감독은 제작 당시 일본 영화잡지와 인터뷰하면서, 한 유명 조선인 배우의 발음 때문에 대사 한 단어에 세 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망루의 결사대>가 제작된 1943년에도 조선인 대부분은 조선 영화가 선전하듯이 두 가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쓰지 못하고, 억압된 모국어와 강요된 국어 사이에서 고심했다.
- 김려실의 『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 - 1901~1945년의 한국 영화사를 되짚다』에서

1943년에 개봉한 영화 <망루의 결사대(望樓の決死隊)>(관련 정보)를 어제 시간을 내서 봤습니다. 이 영화는 1935년 압록강과 맞붙은 북선(北鮮, 식민지 시기에 한반도 북부 지역을 가리키던 말)의 어느 마을을 지키는 주재소 경찰관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작품이 제작된 시기와 그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망루의 결사대>는 일본 제국의 '대동아 공영론, 오족협화, 내선일체' 따위를 제국 '신민'들에게 선전하고자 한 국책 영화입니다. 예나 이제나 일본에서 잘나가는 영화사인 도호[東寶] 주식회사가 제작하였고,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감독의 <동경 이야기(東京物語)>로 세계에 이름을 떨친 배우 하라 세쓰코[原節子]가 주연을 맡은 덕분인지 식민지 시기에 나온 여느 영화와 견주면, 규모가 크면서 연출이 화려합니다. 그리고 감독으로 능력을 인정받던 최인규(崔寅奎)가 연출을 보좌하고, 김신재(金信哉),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로 그 심영(沈影), 전옥(全玉) 등 당시 인기 있던 조선인 배우들이 제법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현재 <망루의 결사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탓에 한국 영상 자료원 영상 도서관을 찾아서 한국 영상 자료원이 내부용으로 만든 DVD를 대출해서 관람했습니다. 자막 번역이 좀 매끄럽지 않았으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친일 성향만 잊는다면, <망루의 결사대>는 할리우드 서부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비적'에게 에워싸인 주재소에서 분투하는 경찰관들과 주민들의 모습이나 '비적'이 망루를 넘어서 주재소 안으로 밀려드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 순간에 나타나는 지원군의 활약을 박진감 넘치게 묘사하였습니다.

물론 주인공들에게 박살이 나는 그 '비적'이 항일 유격대임을 알고, 영화가 끝날 무렵에 흘러나오는 "만주국의 발전과 협력에 힘입어 변경의 치안은 안정되고 민중은 모두 안심하고 생활하기에 이르렀다"라는 해설을 듣는 순간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망루의 결사대>는 오락 영화가 아니라 국책 영화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비롯한 식민지 시기 국책 영화를 인터넷에 공개해서 일제가 저지른 전쟁 범죄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용문에서 설명하였다시피 <망루의 결사대>는 언어 사용 측면에서 흥미롭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도라지 타령>을 부른 김 순사(진훈 분)에게 신입인 아사노 순사(사이토 히데오 분)가 노래 부르고 춤추지 않았다면, 김 순사가 '내지인'으로 보인다고 감탄하거나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로 그 심영이 연기한 교사 유동순이 '가난'을 뜻하는 일본어 단어 '빈보(貧乏, びんぼう)'를 '빈뽀'로 잘못 발음하는 조선인 학생을 교정하는 장면을 보면, 1935년을 시간 배경으로 삼았음에도 '내선일체'와 '국어상용'이 웬만큼 이루어진 세계를 보여 줍니다. 언어로 상하 질서가 잡힌 이 세계가 현실화하였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꼴이 하게 되었을지 생각하니까 가슴이 서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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