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明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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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출발점 역사

『매일신보』에 실린 <의리적 구토>의 광고(매일경제)

1919년 김도산의 <의리적 구토>는 최초의 영화제작, 흥행작으로 기록되고 있다. 연쇄극은 '키노드라마'라고도 불리는데, 무대극 사이사이에서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야외 신이나 특수 장면을 필름에 찍어 무대극과 영화를 복합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영상들이 무대극을 보완하기 위한 것인지, 영화가 주가 되고 무대극이 보완 역할을 한 것인지, 무대극과 영화의 시간 배분이 어느 정도인지는 기록이 없어 분명치 않다. 그러나 연쇄극 <의리적 구토>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부분적이나마 한국인의 손으로 직접 영화를 제작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연쇄극이 시도되어 영화제작이 진일보했다는 의미가 그것이다. 관객들도 매우 신기한 반응을 보였음이 분명하다.

(중략) <의리적 구토>의 흥행 성공은 잠시 연쇄극의 유행을 가져왔다. 1919년 김도산은 <시우정(是友情)>(전 8막 30장, 35mm 1권)과 <형사의 고심>(전 8막 28장), 1920년에 <의적>(35mm 2권)을 발표했고, 임성구는 1920년에 <학생절의> 등 일련의 연쇄극을 발표했다. 문예단의 이기세도 <지기(知己)>, <황혼> 등을 공연하였다. 연쇄극이 나오기까지에는 단성사를 경영하는 박승필의 절대적인 후원이 컸다고 한다.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상영된 <의리적 구토>를 한국영화의 출발로 여기는 것이 영화사의 통념으로 되어 있다. 한국영화계는 10월 27일을 영화의 날로 선포하고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일부 영화사들간에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영화사 연구가 중에는 1923년 4월 9일 사영된 윤백남 감독의 <월하의 맹서>를 한국영화의 시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조선총독부가 지원한 이 무성영화는 35mm 3권으로 저축을 장려하는 내용이었는데, 일본인이 촬영과 편집을 맡고 이월화라는 여배우를 등장시켰다. 이월화는 말하자면 한국 최초의 여배우라고 할 수 있다. 연쇄극의 단계를 지나 완전한 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고, 비록 계몽성이 강한 목적 드라마이긴 하지만 드라마 형태로 구성된 것이라서 한국영화의 시발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동조하는 연구가들도 있다. 그러나 조희문은 그의 <초창기한국영화사연구>라는 논문에서 <국경(國境)> 설을 제창하고 있다. <국경>은 신극좌에서 만들어진 35mm 10권의 무성영화라고 전해지고 있지만, 상영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감독은 김도산으로 되어 있으나, 김도산은 1921년 사망하였기 때문에 직접 참여한 것이 아니고 김도산의 신극좌 일행들이 만든 영화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조희문은 1926년에 이구영이 쓴 회고록과 1923년 1월 11일부터 상영을 예고하는 광고가 《동아일보》에 게재된 사실을 들어, <국경>이 윤백남의 <월하의 맹서>가 공개된 4월 9일보다 앞섰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경>은 1918년 12월 15일자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에 윤백남이 쓴 희곡을 영화화한 한국 최초의 활극영화라고 말한다. 문제는 영화가 완성되어 상영됐다는 기록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아무튼 1919년의 <의리적 구토>가 영화로서 어느 정도 형식을 갖추었고 <월하의 맹서>가 영화의 모든 형식을 갖추었다는 점 등을 미루어볼 때, 또한 <국경>이 극영화라는 구성요소를 고루 갖추었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한국영화의 출발은 1919~1923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그러나 이미 1919년 이전에 외국이 제작하거나 또는 한국인이 제작에 협력한 다큐멘터리 등이 20세기 초부터 나타났다는 사실도 문헌에 전해지고 있는 만큼, 한국영화의 시발을 1919년쯤으로 잡는다는 것은 좁은 해석이라고 본다.

일본에서는 영화 전래 시기인 1896년, 다카하시[高橋]가 수입한 키네토스코프의 일반 공개를 영화사의 시작으로 보고, 상영 마지막 날인 12월 1일을 일본 영화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에 견주어볼 때, 한국영화사의 시작도 100년 전쯤으로 잡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 호현찬의 『한국영화 100년』에서

오늘은 '영화의 날'입니다. '영화의 날'은 1919년 10월 27일에 영화관 단성사에서 <의리적 구토>를 상영한 것을 기리고자 1966년에 만들었습니다. 올해는 한국 영화 100년이 되는 해라고 하여서 여느 해보다 '영화의 날'을 더 크게 기념하는 듯합니다.

다만 <의리적 구토>를 제대로 된 영화로 여기지 않는 사람도 있어서 한국 영화의 출발점을 1919년보다 늦춰 잡거나 이르게 잡기도 합니다. <의리적 구토>든 <월하의 맹서>든 모두 필름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작품의 영화다움을 따진다는 게 왠지 허망해 보인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한국 영화의 출발점이라는 기준을 어떻게 정하든 한국 영화가 한 세기를 전후한 시간 동안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성장하였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앞으로도 관객들의 마음을 흔드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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