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明의 수사학

explain.egloos.com

포토로그



고구려로 망명한 사람들 역사

안악 3호분 남주인공의 그림(동북아역사넷)

4세기 초 동진(東晉)의 평주자사(平州刺史) 최비(崔毖)는 중원으로부터의 한족 유랑자를 받아들여 세력 확대를 꾀했다가 실패 하였다. 최비는 그 당시 요동에 세력을 계속 떨치고 있던 전연(前燕)의 시조 모용외(慕容廆)가 유랑자를 억류하고 있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여 319년 고구려와 선비(鮮卑) 우문부(宇文部)와 단부(段部)와 결탁하여 모용외 공격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모용외는 각 세력 연대의 취약함을 꿰뚫고 먼저 우문부를 대파하였고 또한 최비를 공격하였기 때문에 거꾸로 최비는 고구려로 망명하였다.

또한 전연으로부터도 고구려로 망명간 사람이 있었다. 333년 모용외의 사망 이후 셋째 아들 모용황(慕容皝)이 통치자의 자리를 계승하였지만 모용황의 동생 모용인(慕容仁)이 요동의 평곽(平郭, 랴오닝성 가이저우시)을 근거지로 하여 저항하였고, 모용부의 세력은 요서의 모용황과 요동의 모용인으로 양분되었다. 336년 모용황은 모용인의 예상을 꿰뚫고 요동 공격을 감행하여 모용인을 사로잡아 살해하였다. 이 때 모용인의 진영으로부터 동방으로 도망간 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 동수(佟壽)와 곽충(郭充)은 고구려에 이르렀다. 동수는 이전에 모용황의 사마(司馬)였지만 모용인을 배반하고 또 고구려로 망명했던 것이다. 그 후 동수 등의 기록은 사서에서 사라졌지만 1949년에 조선 반도(한반도를 가리킴 - 인용자)의 황해남도 안악군에서 발견된 안악 3호분에서 68자에 이르는 동수의 묘지가 발견되었다. 이 고분은 횡혈식 석실분으로 묘실 면적은 조선 반도에서 최대의 벽화 고분이며 묘지는 그 서쪽 측실 벽면에 먹으로 쓰여 있었다. 묘지에는 동수(冬壽)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것은 중국 사서에 기재되어 있는 동수(佟壽)와 음이 통하는 것으로 동일 인물임에 틀림없다. 묘지에 의하면 사지절 도독제군사 평동장군 호무이교위 낙랑상 창려현도대방태수 도향후(使持節都督諸軍事平東將軍護撫夷校尉樂浪相昌黎玄菟帶方太守都鄕侯)인 동수가 동진의 영화(永和)13년(357년)에 이 땅에서 69세에 사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고분의 피장자에 대해서는 고구려의 미천왕(美川王)고 고국원왕(故國原王) 등의 가능성도 지적되었으나 동수 본인일 가능성이 높다.

동수가 고구려에 망명하고 2년 후에 이번에는 후조(後趙)로부터 망명자가 있었다. 338년 후조는 전연을 공격하여 극성(棘城, 랴오닝성 이현)까지 진출하였고 전연에게 투항을 권유하였다. 전연의 거취령(居就令) 유홍(游泓)과 동이교위(東夷校尉) 봉추(封抽), 호군(護軍) 송황(宋晃) 등은 이것에 응하여 후조에 투항했지만, 이 후 모용황의 후조에 대한 대규모 공격으로 유홍, 봉추, 송황은 이번에는 고구려로 도망쳤다.

이어서 370년 또다시 전연으로부터 태부(太傅) 모용평(慕容評)이 망명하였다. 전진(前秦)의 전연 공격에 의해 수도 업(鄴)이 함락되고 또 전진의 유격장군(遊擊將軍) 곽경(郭慶)이 동방으로 진출하여 용성(龍城, 랴오닝성 차오양시)에 도달한 시기의 일이다. 그러나 곽경의 군사가 쳐들어오자 고구려는 모용평을 구속하여 전진으로 송환하였다. 고구려는 전진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전진과의 관계를 우선시하였던 까닭이다.

또 41년 북연(北燕)의 풍비(馮丕)도 망명지인 고구려에서 귀환하였다. 게다가 435년 이래 북위(北魏)의 압력을 받고 있었던 북연의 천왕(天王) 풍홍(馮弘)은 일이 생기면 고구려에 의지하는 조약을 체결하고 있다가 436년 고구려가 지배하는 요동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망명 이후의 풍홍과 고구려와의 관계는 반드시 원만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북위로부터 풍홍의 인도를 요청 받자 고구려는 438년에 풍홍을 살해해 버렸다.

또 4세기 초에 나중에 전조(前趙)의 황제가 된 유요(劉曜)가 낙양(洛陽, 허난성 뤄양시)에서 처벌당할 무렵에 조선으로 도망갔고 그 후에 사면되어 귀국하여 전조의 제위를 계승했다는 기록도 있다. 여기의 조선이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명백하지는 않지만 낙랑군 치하의 조선현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하면 이것도 십육국(十六國)으로부터 고구려에 인접한 조선 반도로의 망명의 한 예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사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1976년에 조선 반도의 평안남도 남포시에서 발견된 횡혈식 석실분 덕흥리 고분에서 벽화와 함께 600자 이상의 주목할 만한 글씨가 확인되었다. 그 중 전실 북쪽 벽의 글씨는 묘지의 성격을 지녔고 거기에는 피장자는 "아무개 진(鎭)"이라는 인물로서 408년 경 77세에 사망한 것과 안평 신도(安平 信都, 허베이성 안핑현) 출신이라는 것과 역임한 최고의 관직은 유주자사(幽州刺史)였던 것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따라서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 중국으로부터의 망명자라고 생각되어지지만 어느 세력으로부터의 망명자인지 등은 불분명하였다.

이들 망명자가 단독으로 망명했다고는 생각되어지지 않고 또 안악3호분과 덕흥리 고분의 규모와 구조, 안악3호분의 동진 연호와 관직명의 사용 등의 내용으로부터 그들은 고구려에 대해 반독립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되어지거나 집단으로서의 형태도 느껴진다. 즉 한 사람의 망명자의 배후에는 많은 사람의 이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평양과 그 주변의 묘실에서 벽돌이 사용되어진 무덤으로부터 동진의 연호를 기록한 벽돌이 발견되고 있는 것에서도 중국 사서에 남겨진 이상의 사람들이 조선 반도 북부로 이주하고 있었던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 미사키 요시아키[三崎良章]의 『오호십육국 - 중국사상의 민족 대이동』에서

중국에서 벌어진 전란을 피하여 한반도로 들어온 사람이 예로부터 적잖았습니다. 옛 연(燕)에서 고조선으로 망명하여 왕위를 빼앗은 위만(衛滿)이 그러한 경우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4세기 초에 서진(西晉)이 무너지면서 중국계 유이민들이 살길을 찾아서 한반도 일대로 들어옵니다. 이제 와서 정확한 숫자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수만 명이 이 땅에 왔을 것입니다.

그 뒤에 오호 십육국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객이 고구려 등으로 망명하였습니다. 인용문에 나오듯이 북연의 황제인 풍홍 같이 거물급 인사마저 고구려로 망명할 만큼 대이동이 이루어졌지요. 풍홍은 고구려 장수왕(長壽王)과 마찰을 일으키다가 목숨을 잃었으나, 중국계 망명가 대부분은 낙랑군과 대방군 출신 사람들처럼 한반도 고대 국가들에 선진 문물을 보급하는 일을 떠맡았습니다. 역사 기록에 흔적을 많이 남기지 않았지만, 한반도 고대 국가들이 발전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첨언 하나. 이 글에서 인용한 『오호십육국 - 중국사상의 민족 대이동』은 고유 명사를 거의 다 한자로 표기한 책입니다. 웬만하면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 게 이 블로그의 운영 원칙입니다만, 이번에는 가독성을 고려하여서 한자 표기를 한글로 고친 다음에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한자 병기를 하였습니다. 또한, '遼寧省 盖州市'처럼 한자로 적힌 현재 중국 지명을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서 '랴오닝성 가이저우시'처럼 한글로 바꿔 적었음을 밝힙니다.

덧글

  • 2019/09/09 13:04 # 삭제 답글

    1.고구려는 영토내에도 다민족이 존재하고 고구려로 망명한 사람들도 많다는 점에서 진정한 다민족국가라 생각합니다.

    2.후대의 쌍기도 그렇고 망명인들의 역할을 무시하면 안되겠죠
  • 解明 2019/09/10 21:20 #

    백제도 도성에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살았다는 문헌 기록이 있고, 목간으로도 실증이 되었지요. 다른 나라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고 여깁니다. 다만 외국에서 온 이들의 경험과 지식을 나라마다 달리 받아들였을 텐데, 이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 동두철액 2019/09/11 18:46 # 답글

    일본학자가 중국사에 대한 책을 쓸 때 한반도 국가에 대해선 지나가듯 설명하거나 생략하는 일이 많은 듯 한데 이 책은 고구려가 자세히 언급되니 신기하네요.
  • 解明 2019/09/11 23:28 #

    미사키 요시아키 교수가 글머리에서 박한제 교수와 지배선 교수 등 한국 역사학자들과 교류한 적이 있다고 언급하는데, 그러한 경험 때문인지 책에서 고구려를 자세히 다룬 듯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