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明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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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의 글과 삶 언어

우리말에 일본어가 섞인 광고를 실은 1913년 4월 24일 자 『매일신보』(동아일보)

1800년대를 벗어나 1900년대를 넘어서면서 조선의 개화는 주로 일본에 의존하게 되었고 우리의 문자 생활에도 일본의 영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일본은 조선과 1905년에 '을사보호조약', 1907년에는 '정미 7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조선의 인사권, 법제권, 외교권, 국방권을 장악하였다. 동시에 일본은 1906년 '보통학교령'을 발족하여 조선의 교육 체제를 일본식의 문교 체제에 맞추어 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 일본어를 필수과목으로 하고 중등학교에서는 우리 국어과를 '國語及漢文(국어급한문)'으로 개설하였는데, 이는 조선의 국문을 한문을 보충하는 보조 글자 정도로 전락시키고 한문과 국문의 구분을 없애려는 의도가 다분하였다. 학교마다 일본어가 필수과목으로 정해지고 학교는 일본인 교사로 채워지는 등 일본의 본격적인 동화 정책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신문에는 일본어를 배우라는 강습 광고와 일본어 문법책에 대한 광고가 자주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 상품이 들어오고 이를 선전하는 광고가 신문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매일신보』 같은 친일 신문에서는 고정적으로 '일본어 한마디'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일상 대화의 한 장면에서 국어와 일본어를 대응시켜 놓았다. 일본은 상품 광고에서 일본어를 사용하고 일본어 강습소를 열어 열기를 진작하고 관리를 뽑을 때는 일본어를 익힌 사람을 조건으로 내세워 한반도에서 일본어의 필요성을 만들어 갔다.

일본의 수탈이 가열되면서 신문 기사에서는 조선이 스스로를 칭할 때 '國'이라는 어휘를 사용하지 못하고 모두 '朝鮮' 혹은 뒷말만 딴 '鮮'으로 명칭을 바꾸게 된다. 그래서 '全國에'라는 말은 '全朝鮮에' 혹은 '全鮮에'라는 말로 대치된다. 또 우리 문자를 가리키는 말은 '國文'이나 '國語'를 사용하지 못하고 '朝鮮語'로 바뀌게 된다. 그 대신 국문이라는 자리에는 일본어가 들어앉게 된다. 이런 경향은 친일 성향이 강했던 신문인 경우 더욱 철저하게 지켜졌다. 다만 이때에도 국한문 혼용이 아닌 순 한글로 서민들에게 다가갔던 장르는 민간 신문에 연재되었던 신소설이었다. 국문소설은 자연스럽게 한글 보급 운동을 촉발하였고 여기에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문맹 퇴치 운동과 한글 보급 운동은 박차를 가하기에 이른다. 문학 작품 속에서 사용된 새로운 어휘들은 국어 어휘를 풍부하게 하는 데도 일조를 하였다.

신소설을 중심으로 한 한글 사용이 늘어 가고는 있었으나 정책적으로 일본어를 교육하고 모든 공식적인 문서에서 국한문 혼용 내지는 일본어를 강요하는 일본 강점 사회에서 우리 문장 표현법의 섬세한 발전을 도모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더구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문자 생활을 영위하는 주된 지식 계층에서 우리 문자에 대한 자주의식이 매우 희박하였다. 근대화의 문명과 근대식 문자 생활의 발전을 동일한 가치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문자 생활은 충분하고도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발전된다. 영어가 이집트 문자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세계의 문자가 되기까지는 역사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연마되는 과정이 있었다. 우리 문자 생활은 그런 시간을 가지지 못하였다. 1900년이나 지속된 한자 문화권의 영향에서 이제 막 근대화의 의식이 성장하려는 무렵 일제의 강점 속에서 우리 식의 문장 표현법을 만들어 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려는 더 보수적인 문장을 구사하거나 국한문 혼용체를 수용하는 정도였다. 그 역사의 결과가 아직도 신문기사에, 법조문에, 변호사의 개업 광고문에, 건설 공사를 알리는 표지판에, 관공서에서 발송된 공문서에 남아 있다.
- 정주리·박영준·시정곤·최경봉의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에서

언어와 문자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였지만, 일본어의 영향이 점점 세지던 식민지 시기의 풍경을 보여 주는 글입니다. 일본어를 입으로 말하고, 글로 쓸 줄 아는 게 힘이던 때에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던 이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식민지 시기에 온갖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우리말을 굳이 부려쓰던 사람들 덕분에 우리말은 살아남았습니다.

요즈음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 갈등이 커지면서 아직 우리말 속에 남은 '일본어 잔재'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새삼스레 나옵니다. 여기에서 일본어 잔재란 보통 '사시미'니 '모찌'니 하는 일본어 발음을 거의 다 옮기다시피 한 단어 따위를 가리키겠지요. 이런 일이 모두 무의미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몇몇 단어를 '솎아내기' 한다고 해서 우리말의 품격을 드높이기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말다운 우리말 문장을 만들어 가던 때에 일본어 번역 투 문장에 우리말 문장이 '감염'되었음을 떠올린다면, 일본어 잔재란 그저 단어 차원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을 써서 우리말의 표현력을 기르는 게 이른바 일본어 잔재를 없애는 것보다 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쉽지 않겠지만, 저부터 문장을 가다듬는 일에 마음과 힘을 많이 쏟아야겠습니다. 더 아름답고, 더 고운 우리말을 위하여…….

덧글

  • 남중생 2019/08/10 12:21 # 답글

    저도 공감합니다!
    아름다운 우리말 만들기에 힘써야겠습니다.
  • 解明 2019/08/12 14:13 #

    예, 같이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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