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明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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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문이 들려주는 백제사 이야기 독서

백제에서 369년에 만들었다고 추정하는 칠지도(七支刀)에는 한자로 61자 또는 62자쯤 되는 글씨가 새겨졌습니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겨우 대여섯 문장에 지나지 않는 글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 창고에 들어간 뒤에 오랫동안 잊힌 칠지도가 19세기 후반에 재발견되면서 그 단문은 고대 한일 관계사의 주요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남북한과 일본 역사학자들에게 칠지도 명문 해석은 조국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100년 넘게 이어진 논쟁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그들은 칠지도가 진상품인지 아니면 하사품인지를 밝히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본 학자들은 백제가 왜(倭)에 칠지도를 바쳤다고 봤지만, 남북한 학자들은 백제왕이 왜왕에게 칠지도를 내렸다고 여겼습니다. 일본 학계는 백제 사신 구저(久氐)가 귀국하는 왜 사신 치쿠마 나가히코[千熊長彦]를 따라와서 "칠지도 한 자루와 칠자경(七子鏡) 한 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을 바쳤다"라는 『일본서기(日本書紀)』 기록에 근거하여 사서에서 '초고왕(肖古王)'이라고 부른 근초고왕(近肖古王, 재위 346~375)이 진구 황후[神功皇后]에게 칠지도를 헌상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우리 학계는 백제왕이 세자를 거쳐 '후왕(侯王)'인 왜왕에게 칠지도를 하사하였다고 반박했습니다.

똑같은 글을 읽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한일 역사학들은 사뭇 다른 역사상(歷史像)을 그렸습니다. 칼에 녹이 슬고 상감으로 박아 넣은 금박이 떨어져나오면서 판독하기 어려운 글씨가 여럿 생겼다지만, 상대를 낮잡는 의식이 슬며시 비쳤다고 의심할 만합니다. 근대의 국가·민족의식을 고대사에 투영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백제와 왜의 관계를 어느 한쪽이 우월했다기보다 대등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칠지도 명문 해석은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백제가 왜에 칠지도를 바치지도 내리지도 않고, 줬다고 하는 게 실상에 가까웠을 듯싶다는 의견이 적잖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칠지도는 양국이 우호국이었음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물론 왜왕에게 칠지도를 선물한 이가 백제 왕세자였다고 이해한다면, 백제와 왜의 국제적 위상은 차이가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일부에서 말하는 대로 백제가 왜를 제후국으로 삼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칠지도 명문은 백제 왕실이 왜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보여 주는 일종의 외교 문서입니다. 백제의 입장을 담은 글만을 증거로 왜가 백제에 신속(臣屬)하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난 2004년 일본 나라 국립 박물관에 전시된 칠지도 실물(한겨레)

헌상설과 하사설에서 벗어나서 칠지도 명문을 읽으면, 더 깊고 넓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김영심 교수는 동아시아사 관점에서 칠지도를 바라보자고 말합니다. 동진(東晉)이 근초고왕을 '진동장군(鎭東將軍) 영낙랑태수(領樂浪太守)'로 책봉한 372년보다 3년 앞서 동진 연호인 태화(太和, 명문에는 '泰和'로 표기)를 적었고, 짧은 글일지언정 한문으로 된 외교 문서를 작성할 만치 칠지도에서 중국 한자 문화의 영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후한(後漢)에서 제작한 듯한 원가도(元嘉刀) 같은 칼에 적힌 것과 비슷한 문구가 칠지도에서 보인다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무렵 백제의 한자 문화를 무르익게 한 주역은 낙랑군과 대방군에서 망명한 사람들이었는데, 백제 조정은 이들 중국 군현 출신 인사를 내세워 동진과 교섭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받아들인 선진 문물은 백제가 왜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근초고왕이 동진과 왜로 이어지는 외교관계를 구상한 것은 고구려가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요동지역 전선에서 343~384년까지 40여 년간 중국세력과 화평관계를 유지하는데, 이 기간 동안 한반도 서북부 일대를 장악하면서 점차 한반도 남쪽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미 4세기 전반경 신라와 공식 접촉을 갖고 영향력을 키워가던 고구려에 맞서 백제는 가야-왜로 연결되는 블록을 형성하고자 했다.

물론 근초고왕대에 백제는 신라에 사신을 보내서 수교하고, 좋은 말을 선물로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근초고왕대의 대외교섭에서 대신라관계보다는 대가야 및 대왜관계가 중시되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보면 칠지도는 백제가 대고구려 전투에서 왜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만들어서 보낸 선물이라고 볼 가능성이 커진다. 고구려에 맞서는 과정에서 새삼 왜의 존재와 그 군사력을 알고 적극적으로 왜와의 외교를 추진했던 것이다. 『일본서기』 신공 46년조나 51년조에서 백제를 진기한 보물의 나라, 좋고 진기한 물건은 예전에 없던 것이라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백제는 자신들이 선진문물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전수할 수 있는 나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는 가운데서 나온 적극적 조치였다.
- 「4세기 동아시아 세계와 백제의 위상, 칠지도」에서

결국, 일곱 개 나뭇가지가 뻗은 것처럼 생긴 칼은 4세기 후반 백제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들여다보는 창인 셈입니다.

학연문화사에서 2014년에 낸 『금석문으로 백제를 읽다』(관련 정보)는 김영심 교수를 비롯하여 11명의 학자가 쓴 글을 실은 책입니다. 이 책은 앞에서 이야기한 칠지도뿐만 아니라 무령왕릉 지석, 사택지적비 등 여러 금석문으로 백제사의 쟁점들을 두루 살펴봤습니다. 이를테면 신희권 교수는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곧은입항아리에 쓰인 '대부(大夫)'나 '정(井)' 따위의 글씨로 "백제는 개국 이래 문자로 사적을 기록한 적이 없다가 이때 이르러 박사(博士) 고흥(高興)을 얻어 비로소 서기(書記)를 갖게 되었다"라고 한 『삼국사기(三國史記)』 기사의 뜻을 되새겨 보고, 문동석 교수는 무령왕릉에서 나온 청동 거울에 아로새긴 글로 백제의 도교 사상을 알아보며, 백제사 연구의 권위자인 노중국 선생은 왕흥사지 사리기 명문으로 왕자를 잃은 슬픔을 겪는 가운데서도 원찰을 세워서 왕권을 강화하려고 한 위덕왕(威德王, 재위 554~598)의 의지를 읽어 내려고 했습니다.

삼국으로 함께 묶이면서도 백제사는 고구려사와 신라사에 견줘 문헌 사료가 많지 않습니다. 그 탓으로 엉성하기 이를 데 없는 백제 역사를 금석문 연구 성과로 재구성한 『금석문으로 백제를 읽다』는 참신한 느낌을 줍니다. 일찍이 『고대로부터의 통신』이 금석문을 소재로 한 고대사 이야기를 시도한 적이 있으나(관련 글), 『금석문으로 백제를 읽다』는 백제사를 한성 도읍기·웅진 도읍기·사비 도읍기로 나눠서 집중적으로 다뤘기에 차별점이 있습니다. 배경지식이 웬만큼 있다면, 글이 쉽게 읽히도록 쓰려고 한 노력도 엿보입니다. 고대사, 그중에서도 백제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덧글

  • 진냥 2018/12/10 23:06 # 답글

    어떤 학설에 천착한다면 사료의 해석이 학설에 잡아먹히는 경우도 생기지요... 딱 그런 점을 지적해주신 훌륭한 글! 훌륭한 책! 이... 읽어야겠습니다!!!ㅠㅠ
  • 解明 2018/12/11 21:31 #

    근대인의 시각과 욕망을 고대사에 투영하였다는 점에서 칠지도 명문 논쟁은 광개토왕릉비의 신묘년조를 둘러싼 논쟁과 닮은꼴이라고 생각합니다.
  • 바람불어 2018/12/10 23:13 # 답글

    저는 칠지도 뒷부분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보고, '신경 써서 만든 귀중한 거니까 니들 잘 보관해라'하는 뉘앙스로 읽었습니다. '고위왜왕지조 전시후세'는 아무리 생각해도 바치는 게 아니라 당부나 지시로 보여서.

    물론 내가 옳다는게 아니라 전문지식은 전문가에게 ^^;
  • 解明 2018/12/11 23:22 #

    헌상설의 근거가 되는 『일본서기』는 신뢰성에 문제가 있고, 말씀하신 대로 칠지도 명문에서도 백제왕이 왜왕에게 칼을 바쳤다는 느낌이 없지요. 당시 백제의 국력을 생각한다면, 백제가 왜에 보검을 바쳤다는 게 당찮은 일이라고 봅니다. 물론 본문에 적었듯이 양국의 국제적 위상이나 국력이 차이는 있었다고 하더라도 백제와 왜는 서로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선진 문물과 병력을 주고받는 관계였기에(역사학자 김현구 교수는 이것을 '특수한 용병 관계'라고 불렀습니다) 하사설도 지나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6341 2018/12/11 13:36 # 답글

    좋은 서적에 대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역사가 그냥 역사가 아니라 각국의 국가적 감정의 영향을 어떻게든 받게 되는 듯 합니다. 하나하나 극복하면서 역사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解明 2018/12/11 21:43 #

    좋은 책인데, 많이 팔리지 않은 듯하여서 아쉽습니다. 꼭 한번 읽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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