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明의 수사학

explain.egloos.com

포토로그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우리 영화 영상

오늘날 서울역 일대를 배경으로 삼은 <청춘의 십자로>의 한 장면(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2008년 5월, 우리 영상자료원이 개관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준비한 <청춘의 십자로>안종화 감독, 1934 공연은 한마디로 빅 히트였다. 객석에서는 쉴 새 없이 폭소가 터졌고 공연이 끝난 뒤 극장을 나서던 사람들은 내게 "O.S.T. 음반 내라"라거나 "장기공연해라"라는 주문들을 했다. 외국서 온 게스트들도 변사 해설을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을 테지만 즐거운 표정이었고 "판타스틱했다" "즐거운 경험이었다"라고 덕담들을 했다.

첫날 공연에서 새카매진 얼굴로 노심초사하던 총연출 김태용 감독도 공연을 끝내곤 들떠 있었고 '이제 마음 놓고 보여줘도 되겠다' 싶었던지 다음 날 공연에는 가족과 친구들을 대거 초대했다. 전체 2회 공연 중에서 둘째 날은 좌석이 매진되고 보조석과 방석이 동원됐다.

필름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한국영화. 1934년 작 무성영화를 그 시대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변사를 붙이고 악극단 연주를 곁들여 상영한 것인데, 이 '무성영화 시대'식 무성영화 상영은 단순한 영화도 뮤지컬도 연극도 음악회도 아닌, 그것들이 마구 뒤섞인 또 다른 장르였고 명실 공히 '종합예술'이었다. 그것은 그저 객석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 이상의 어떤 체험이었다. 흑백의 스크린과 변사의 생목소리와 이따금씩 끼어드는 악극단의 반주와 식민시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통치마 저고리 여가수의 애살스런 노래, 그 역동적이면서 리드미컬한 소동 한가운데 가담해 있는 느낌! <청춘의 십자로> 공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고전적인 만큼 실험적이었고 오래된 것이라 새로웠다.

내 자신도 이 입체적인 영화, 이 과묵하면서도 떠둘썩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더구나 이 필름을 발견해서 정체를 확인하고 일본서 복원해와 무대에 재현해 대중에 공개하는 과정을 기억하기 때문에 <청춘의 십자로>의 리바이벌은 우리 영상자료원에, 그리고 내게 아주 특별했다.

국내 최초로 발견된 질산염 필름을 위한 특별저장고

2007년 여름 우리가 처음 본 <청춘의 십자로>는 8개의 녹슨 캔 안에 비닐에 싸인 채 들어 있던 낡은 필름이었다. 여덟 캔 중에 하나에는 필름 대신 하얀 가루가 담겨 있었다. 필름이 산화되어 밀가루처럼 변한 것이었다. 영화를 구성하는 8개의 롤 가운데 한 토막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셈이다. 필름 캔 뚜껑에는 <아리랑> <장한몽> <세 동무>, 이런 제목들이 붙어 있어 우리는 한두 토막이나마 <아리랑>이 굴러들어 왔나 하고 잠시 흥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직원들은 이것이 드물게도 오리지널 네거필름이라는 데 놀랐고, 국내에 한 편도 남아 있지 않은 질산염 필름지금과 같은 아세테이트 필름이 나오기 전 50년대까지 생산된 초창기 필름이라는 데 더욱 놀랐으며, 1936년 작 <미몽>보다 2년 앞선,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필름이라는 데 더더욱 놀랐다. 한국영화사를 전공한 우리 연구원은 필름 몇 컷을 점검하고는 안종화 감독의 1934년 작 <청춘의 십자로>라고 확인해주었다. 필름이라는 실체로서 존재하는 한국영화사의 기원이 2년 앞당겨지는 순간이었다.

<청춘의 십자로> 필름을 갖고 있던 이는 전쟁 전에 단성사를 운영하던 분의 아드님이었다. 피난 갈 때 단성사 창고에 필름 캔들이 거적때기에 덮인 채 쌓여 있었다고 하는데, 그 뒤 주인이 바뀌고 또 이사를 다니고 하면서 결국 이 8개의 캔이 살아남았다.

질산염 필름은 가연성이 강해 필름들끼리 부대끼다 자연발화할 정도라 가끔 필름수장고 화재의 원인이 되곤 한다. 다시 말해 거의 불쏘시개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성질이 불같은' 필름이 어느 민가의 창고에 쌓인 채, 가끔 트럭에 실려 이사도 다니면서, 지금껏 70년 넘게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불가사의다. 필름 주인은 "어머니가 생전에 중요한 물건이니 잘 간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라고 했고 물건의 정체를 모른 채 어머니 말씀을 실천에 옮긴 셈이다. 그는 한 번도 캔의 뚜껑을 열어보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고 했는데, 대체로 사람 수명보다도 짧은 질산염 필름이 그토록 오래 살아남은 비결이 바로 그것이었다. 알루미늄 캔들은 닫힌 채 부식돼 드라이버와 망치 같은 도구를 이용해 열어야 했는데, 필름이 숨도 못 쉬고 알루미늄 캔 안에 비닐로 꽁꽁 싸여 있었던 덕분에 바깥 고익에, 산소에 노출되지 않았던 것이다. 주인이 30년 전쯤 이 캔들을 처분해 볼까 하고 필름 캔 하나를 열어 여기저기 보여준 일이 있다고 하는데 밀가루가 되어 사라진 캔이 바로 그 캔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또한 영상자료원이 보유한 첫 질산염 필름이라, 우리는 이 '성질이 불같은' 특이체질의 필름을 잘 모시기 위해 질산염 필름 저장고(크기나 모양이나 흡사 냉장고처럼 생겼는데)를 새로 구입했다. <청춘의 십자로> 필름 원본은 지금도 필름 수장고가 아니라 우리 보존기술센터 사무실 가운데 따로 놓인 특수 저장고에 달랑 혼자 들어 있다. 남들은 다 여관방에 빽빽이 끼어 자는데 저 혼자 성질 더러워서 호텔 스위트룸을 차지하고 있다고나 할까.

돌아온 <청춘의 십자로>, 길어지는 한국영화사

지금까지 제작·개봉한 한국영화는 5970편, 그중에서 3924편이 영상자료원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2009년 5월 31일 기준 전체 편수의 65.7퍼센트를 건진 셈이다. 영상자료원의 전신인 필름보관소가 생겨난 1974년부터 국가가 영화 필름을 거둬서 보관하기 시작한 셈이고 1996년 필름의무납본제도가 생겨나면서 비로소 체계적인 수집 보존이 이루어졌으니, 우리 영화 아카이브 정책은 영화평론가들의 조롱거리가 돼도 할 말이 없다. 이걸 두고 정성일 씨는 "치매 걸린 한국영화사"라 했고 김소영 씨는 1993년 유학에서 돌아와 한국영화사를 좀 공부하려고 들여다보았더니 식민시대 영화가 한 편도 남아 있지 않더라면서 "텅 빈 아카이브"라 불렀다.

아카이브 정책도 문제이지만 식민체제, 미군정에다 전쟁에 이르는 '정치적 사고의 현대사' 40년이 초창기 영화의 흔적을 깡그리 날려버렸다. 내가 영상자료원에 왔을 땐 해외 아카이브를 뒤지면서 초창기 영화를 발굴해 '텅 빈 필름창고'를 채우는 작업이 한창 활발할 때였다. 덕분에 한국영화사의 기록은 점점 길어지고 있고 2004년 중국 전영자료관에서 찾아온 <군용열차>의 1938년에서 2005년 <미몽>의 1936년으로, 다시 2007년 <청춘의 십자로>의 1934년으로, 2년씩 기록이 갱신돼왔다.

그런데 이 현존 최고의 필름이라는 것이, 그동안 우리가 훑고 다닌 러시아나 중국이나 일본 같은 데도 아니고, 국내에서 그것도 서울서, 그것도 은평구, 자료원 이웃동네에서 발견됐다는-솔직히 말하면 필름 주인이 자발적으로 제보를 해온 것인데- 사실이 좀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다.

어쨌든 <청춘의 십자로>는 질산염 필름인 데다 수축이 많이 진행돼 국내에서는 다룰 수 없는 상태였고 일본에 보내 복원작업을 해야 했다. 복원돼 돌아온 <청춘의 십자로>의 내부 시사 때 우리 직원들 사이에선 가벼운 탄성이 일었다. 대사도 음향도 없었지만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웠기 때문이다. 카메라워크나 편집이 과감하고 실험적이었으며 이야기 구성이나 연기도 대단히 코믹했다.

1930년대 당시의 서울도 '시대사적 볼거리'였다. 서울역과 그 광장 주변, 클래식 풍의 외국산 자동차와 지게와 '구루마'가 뒤섞이는 거리, 근대 도시의 모던보이들과 그 주변의 여자들, 골프장과 연회장과 이층 양옥의 그야말로 '유한계급有閑階級' 사람들, 그 한편에 늙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셋집에 사는 어린 자매. 가난한 처녀를 섹스 파트너로 낚아챈 악당들과 그녀를 구해내는 힘 좋고 성격까지 좋은 주인공 남자!
- 조선희의 『클래식 중독』에서

한국영상자료원장을 지낸 조선희 씨가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영화인 <청춘의 십자로>(관련 정보) 필름 발견과 복원 경위를 설명한 글입니다. 현재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청춘의 십자로>를 VOD로 감상할 수 있는데, 음악과 중간 자막조차 나오지 않는 무성 영화인지라 인물 관계와 내용 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또한, 수십 년 만에 극적으로 필름을 되찾았지만, 일부가 훼손돼 온전한 상태가 아니기에 아쉽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탕웨이의 남자 김태용 감독에게 총연출을, 배우 조희봉 씨에게 변사를 맡겨서 영화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대본이 사라졌기에 <청춘의 십자로> 재해석 작업에 참여한 이들은 작품을 숱하게 보면서 대사를 적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 분위기에 걸맞은 음악도 작곡하였습니다. 이렇게 변사 해설과 노래가 곁들여지면서 영화는 풍성해졌습니다. 일반에 처음 공개하고서 이제까지 십 년 넘게 상연이 이루어진 비결도 재해석 작업이 없었더라면, 어려웠을지 모릅니다.

작품은 청춘 남녀의 사랑과 배신 그리고 복수를 그린 통속극입니다만, 오늘날 우리의 눈에 흥미롭게 보이는 풍경이 많습니다. 주인공 영복(이원용 분)이 짐을 나르는 경성역 일대와 지금의 서울역 일대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영복과 사귀는 계순(김연실 분)이 일하는 주유소도 눈길을 끕니다. 영화 <암살>에서 독립운동가 안옥윤 일행이 주유소에서 거사를 치르는 장면에 영감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조선의 애인'으로 불리던 신일선 씨가 영복의 누이인 영옥 역을 연기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당시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줬을 성싶습니다.

현전하는 식민지 시기 영화 대부분이 친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과 달리 <청춘의 십자로>는 그러한 비극을 겪지 않았습니다. 농촌의 가난과 도시의 빈민 문제를 얼핏 다루었으나, 더 무거워지지 않고 유쾌한 분위기로 막을 내립니다. 마지막에 세 남녀가 장난스럽게 기도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성격을 고스란히 나타냅니다(영화를 소개한 1934년 9월 21일 자 『동아일보』 기사는 "좀 천박한 느낌"이라며 비판했지만 말이지요). 나중에 변사 조희봉 씨의 해설이 들어간 영상도 인터넷에 공개되어서 더 많은 사람이 <청춘의 십자로>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덧글

  • 역사관심 2018/12/07 03:47 # 답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카이빙의 문제와 더불어 그걸 이용하는 행태가 같이 맞물려야 하는데, 그나마 영상자료원은 요즘 유튜브에도 이런 영화들을 공개하는등 잘하는 편이더군요. 이게 맞물려야 선순환되는지라...
  • 解明 2018/12/08 19:26 #

    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덕분에 오래된 영화 많이 봐서 즐겁습니다. ^-^
  • virustotal 2018/12/07 20:12 # 답글

    sdd같은 경우 복원이 불가능하고 돈이 많아도 미친짓이고 하드는 고장은 잘나나 복원은 잘되지만

    결국 장기간을 보관할려면 테이프로 빅 데이터로 보관해야 하는건가 그런생각듭니다.

    물론 테이트 자체는 매우 저렴하나 그 장비가 매우 비싸고 속도도 문제지만

    디지털화를 한다고 해도 이번 화재사건으로 크라우드는 헛소리고 구글처럼 지들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랜섬웨어한테는 테이프는 이해도 못하는 물건이죠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80130142101

    http://www.ndsl.kr/ndsl/search/detail/trend/trendSearchResultDetail.do?cn=GTB2017002795
  • 解明 2018/12/08 19:27 #

    전문가가 아닌 저로서는 잘 알지 못하니 의견을 제시하기 어렵네요.
  • abu Saif al-Assad 2018/12/11 12:28 # 답글

    잘 읽었습니다. 꼭 한번 봐야겠네요
  • 解明 2018/12/11 21:44 #

    고맙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