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明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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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은 독살되었을까? 역사

조선의 스무 번째 임금인 경종이 묻힌 의릉(연합뉴스)

병석에 누운 지 한 달여가 되는 8월 20일에 윤(昀, 경종의 휘를 가리킴 - 인용자)의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이번에는 가슴과 배가 마구 조이는 듯이 아프다고 했다. 윤은 전날 게장과 감을 맛있어하며 많이 먹었다. 입맛이 없어 며칠간 수라를 제대로 들지 못하던 사람이 의외의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지금 악화된 증세가 나타나고 있었다.

게장과 감은 예로부터 상극의 음식 궁합으로 알려져 있다. 전혀 상극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고, 있더라도 소화불량 정도의 가벼운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속설은 좋지 않게 보는 쪽이다. 양자의 상극 관계를 인정하는 한의학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치명적인 것으로 보는 듯하진 않다. 그러나 문제는 환자의 상태이다. 아주 쇠약해진 윤에게는 조그만 부작용도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금(昑, 영조의 휘를 가리킴 - 인용자)을 의심하는 측에서 본다면 수상쩍게 볼 수 있는 수라상의 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수라상과 약제를 올리는 일 모두 사전에 살피는 것은 금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왕인 윤의 죽음으로 인한 최대의 수혜자는 아우인 금이기에 의심의 눈초리도 때로 가능할 수 있다. 게장은 대비가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왕의 주방에서 많은 생각 끝에 지어 올린 것이다.

의원들이 곧 게장과 감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여 적당한 약 처방을 하였지만, 이후 윤의 증세는 악화되기만 한다. 복통과 설사가 심해지면서 더욱 피곤한 모습이 되어갔다.

금이 게장과 감을 윤에게 올려 결국 죽게 만들었다는 이른바 독살설이 이로 인해 나온 것인데, 그러나 여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당시에 그렇게 할 긴급한 이유가 금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자 지위를 윤이 적극 지지, 보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금이 시간을 다투어가며 윤을 시해할 이유는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윤의 평소 건강 상태로 볼 때 그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은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물론 김일경 등 소론 강경파에 의한 예측 못 할 재공격의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그로 인해 금이 서둘러 윤을 해칠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세자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확보한 데다 노론은 물론 소론 온건파의 지지도 받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또 두고두고 문제가 된 게장과 감의 경우도 그렇다. 윤이 이들 음식을 먹은 후 병세가 악화되고 결국 죽음에 이른 것으로 추론해 볼 여지는 있다. 바로 이 엄청난 결과 때문에 이들 음식에 강한 혐의가 두어지고 있지만, 그 이전의 상황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근 한 달 전부터 제대로 수라를 들지 못하고 잠도 부족한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입맛이 없어서 먹는 것 자체를 귀찮아 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어떻게 하든 윤이 정상적으로 수라를 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측근 모두의 소망이었다. 실제로 그가 게장을 맛있어하며 수라를 들었을 때 궁중 안 사람들은 모두가 기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이 남달리 게장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찾다가 게장에 착안하여 올린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감은 때마침 수확 철에 접어들어 입맛을 돋우기에 좋은 과일이었으므로 신중한 생각 없이 올려졌다고 볼 수도 있다. 금이나 수라간에서의 당시 최대 관심이 어떻게 하든지 왕이 수라를 들게 하는 데 있었다면 말이다.

대비(숙종의 둘째 계비 인원왕후를 가리킴 - 인용자)가 감과 함께 게장을 보냈다고 하여 그녀에게 혐의를 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지나친 생각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그녀는 윤을 지지하는 소론 집안 출신이다. 윤에게 특별히 개인적으로 원한을 가질 이유도 없고, 금을 편애하여 왕인 윤을 감히 해롭게 할 마음을 가질 입장도 아니다. 윤을 해롭게 함으로써 노론에 유리한 정국을 만들고자 했다고는 더구나 볼 수 없다. 만일 그녀가 윤에게 게장과 감을 보냈다면 법상의 아들이자 나라의 왕인 윤에게 어떻게든 수라를 들게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게장과 감이 의학상 좋은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수라를 들게 하기 위한 간절한 소망 앞에서는 그로 인한 만일의 결과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할 수 있다. 잘한다고 하는 일이 결과에서 주의 부족으로 엄청난 결과를 낳는 일이 인생사에서는 더러 있지 않은가. '천려일실千慮一失(온갖 주의를 다해도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란 말도 그래서 있는 법이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사리가 분명하고 겸손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부모 밑에서 배우고 자란 그녀가 음흉한 뜻을 품고 엉뚱한 짓을 했으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실제로 그녀는 별다른 악평을 듣지 않고 산 여인이었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왕인 윤의 병세 악화가 꼭 게장과 감의 부작용 때문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근 한 달여에 걸쳐 음식을 제대로 들지 못한 공복 상태나 다름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게장과 감 때문에 갑자기 과식을 하고 말았다. 이 과식에서 온 부작용의 여지도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위장이 나쁜 사람이 갑자기 과식을 했을 경우 가슴과 배에 심한 통증이 올 수 있다는 의사들의 견해도 있다.

그런데 윤의 재위 4년 8월 2일(임신)자 기록(『경종실록』)에는 그가 "비위가 허약하여 수라를 싫어한지가 오래 되었다"고 했다. 위장이 좋지 않아 음식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같은 날짜의 기록에는 세자 때부터 걱정과 두려움으로 고질병을 얻었다 했고, 다른 기록(『경종수정실록』)에는 재위 2년 3월 17일(임인)에 문서를 읽다가 '화열'이 오르고 '심기'가 폭발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러 종류의 정신적 고통과 울화로 인해 위장에 커다란 손상이 갔을 것을 짐작케 하는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게장과 감을 먹은 이후 윤의 악화된 증세는 갑작스러운 과식에 의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조선사를 전공한 이종호 씨가 쓴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관련 정보)은 경종(景宗, 재위 1720~1724)을 무기력한 임금으로 인식하는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이 책에서 글쓴이는 노론(老論)을 무너뜨린 신임옥사(辛壬獄事)가 경종의 포석으로 이루어졌음을 설명하며, 그동안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은 경종의 새로운 면모를 밝혔습니다. 또한, 글쓴이는 경종과 영조(英祖, 재위 1724~1776)가 우애 깊은 형제였다고 주장합니다. 경종은 김일경(金一鏡, 1662~1724) 등 소론(少論) 과격파(준론)의 정치 공세에서 영조를 끝까지 감쌌고, 영조는 자기를 지켜 준 경종을 '황형(皇兄)'이라고 부르면서 평생 그리워하였다는 것이지요.

경종과 영조의 형제애를 강조하는 만큼 이종호 씨는 경종 독살설을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을 가능성은 작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저는 경종이 영조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한 기록이 남았기에 경종과 영조가 서로를 끔찍이 아꼈다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으나(관련 자료), 경종이 독살되지 않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경종 독살설은 영조가 즉위한 뒤에 실세한 소론과 남인(南人) 일파가 퍼뜨린 이야기라고 봅니다.

다만 "의약(醫藥)의 이치를 알지 못하나"라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당시 세제(世弟)이던 영조가 어의의 처방을 무시하고 인삼차를 올렸고, 그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경종이 승하하는 바람에 형을 죽였다는 의심을 산 측면도 있음을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영조의 행동을 선의로 해석하면, 어떻게든 형을 살리고 싶은 간절함이었겠지만, 전문가의 소견을 듣지 않은 잘못은 작지 않습니다. 경종의 상태가 어떻게 처방하든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정적들에게 그럴듯한 구실을 줬기 때문입니다. 영조가 이 문제로 오랫동안 속앓이했음을 생각하면, 얄궂은 일입니다.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은 사료로 뒷받침하여 보여 줘야 할 인물의 심리를 소설을 쓰듯 단정하여 서술한 곳이 적잖습니다. 대중이 읽기 쉬운 교양서를 쓰려고 한 듯합니다만, 역사서로 객관성을 갖췄다고 평가하기 힘든 부분이지요. 특히 의릉을 참배하는 영조의 속마음을 글쓴이가 상상해서 쓴 대목은 보아 넘기기 괴로울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단점이 있음에도 임금으로서 경종을 재발견하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 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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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8/11/15 03:57 # 답글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은 사료로 뒷받침하여 보여 줘야 할 인물의 심리를 소설을 쓰듯 단정하여 서술한 곳이 적잖습니다."

    >>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이런 식의 기술이 표기된 책이 서점 곳곳에서 보입니다. 이런 책은 조금 읽다가 이내 내려놓게 되더군요. 이런 식의 단정대신 의견을 꼼꼼하게 정립해서 보여주는 책이 더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 解明 2018/11/16 21:36 #

    동의하는 바입니다.
  • 해색주 2018/11/18 00:35 # 답글

    저 상황에서 굳이 영조가 형을 시해할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배다른 형제이고 정치적으로 다른 당파의 지원을 받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저런 위협을 무릅쓸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직후 일어난 반란의 진행 사항을 보면 당시 상당히 많은 인원들이 독살설을 진지하게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解明 2018/11/18 21:34 #

    정조 사후에 정약용 등 남인들이 독살설을 제기한 것과 비슷한데, 음모론이 사실인 경우는 드물지요. 경종 독살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요.
  • 남중생 2018/11/20 23:52 # 답글

    의원의 말을 듣지 않고, 인삼차와 함께 (오두 곁뿌리) "부자"를 약으로 썼군요.

    저도 한의학에 대해 아는 것이 적어 배우는 중이지만, 오두가 동서고금 인정받은 강력한 독초라서... 이 처방에 대해서는 이미 기존의 독살설들이 다루고 있을까요?

    "뜨겁고 쏘는 성질을 가진 오두는 질병을 일으키는 풍(風)과 냉기를 몸 밖으로 몰아내고, 몸 속 침전물을 분쇄하고, 몸의 기운을 다시 일으켰다. 음양 우주론의 언어로는 활동적이고, 열을 가하고, 외적이고, 상승하는 기운인 "양기(陽氣)"를 보충했다. 오두의 원뿌리는 부자(附子)라고 불리는 곁뿌리에 비해 더 독성이 있다고 여겨졌고, 야생 오두가 밭에서 기르는 오두보다 더 강력했다."(http://inuitshut.egloos.com/1938239)
  • 解明 2018/11/21 22:52 #

    저는 한의학을 알지 못하니까 부자의 효능이 어떤지도 모릅니다만, 영조가 평소에 인삼과 부자를 복용하였다고 하는군요. 아마 자기 몸에 효과가 있으니까 형 몸에도 효과가 있으리라고 여겨서 인삼과 부자를 써야 한다고 우긴 듯합니다. 영조는 똑똑하지만, 고집이 센 사람이라서 경종의 죽음을 봤음에도 인삼차가 최고라는 생각을 말년까지 버리지 못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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