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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이전에 정상기가 있었다 역사

<동국대지도>의 모습(국립중앙박물관)

영조가 주문한 「삼국기지도」가 진상되던 날 홍문관 수찬 홍양한(洪良漢, 뒤에 洪良浩로 개명)은 정항령(鄭恒齡, 1710~70)의 집에 있는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가 백리척(百里尺)을 써서 제작한 우수한 지도라는 사실을 왕에게 알려 주었다. 왕은 승지를 시켜 정항령 집의 「동국대지도」와 「팔도분도첩(八道分圖帖)」을 가져오게 하였다. 지도의 정확성에 감탄한 왕은 두 부를 모사하여 홍문관과 비변사에 비치해 두라고 명하였다.

영조가 보고 감탄한 정항령 집 지도라고 한 것은 정인지의 9세손인 농포자(農圃子) 정상기(鄭尙驥, 1678~1752)와 그의 아들 정항령 부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정상기의 인친(姻親)이자 학우였던 성호 이익(李瀷)은 정상기가 '적세방채(積歲訪採)' 즉 몇 해 동안 자료를 수집한 끝에 합하여 전도(全圖)를 만들고, 나누어 8폭을 작성했다고 소개했다. 또 이익은 "정상기가 정밀하게 헤아리고 노력을 소비하였으며, 백리척을 만들어 비교하고 헤아려서 지도를 만들었는데 모두 8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로써 이 지도는 당시에 유행하던 여러 지도와 기록들을 참고하여 새로 편집한 지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17세기~18세기 초에는 비변사가 소장한 지도 중에 우수한 것이 적지 않았다. 예컨대 1713년(숙종 39) 청나라 사신이 우리나라 지도를 보여 달라고 할 때 비변사 지도는 너무 자세하여 보여줄 수 없었다고 한 기록이 보이고, 앞에서 설명한 1706년의 「요계관방도」에 나타난 한반도 북부의 지형은 정상기 지도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정확하다. 이는 호란 이후 수없이 제작된 관방지도 제작의 결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비단 관찬지도만 우수한 것이 아니라 민간인 중에도 17~18세기 초에 우수한 지도 제작자가 없지 않았다. 17세기의 윤영(尹鍈, 이원익의 사위)이 제작한 지도로 정상기의 지도와 비슷하다고 하며, 정상기보다 10여 년 연상인 황엽(黃曄, 1666~1736)의 「여지도」도 정밀하기가 그지없다고 한다. 앞서 정상기·정항령 부자의 지도를 영조에게 소개한 홍양한도 "비변사에 지도가 있으나, 정항령 집의 지도가 한층 자세하니 모사하는 것이 좋다"고 한 것으로 보아 정항령 집의 지도가 상대적으로 비변사 지도보다 상세하기는 해도 그다기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당시 관찬지도보다 한 발 앞서간 정항령 집 지도를 정부에서 모사한 것은 그후 관찬지도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정상기가 창안한 백리척(百里尺) 작도법은 지금까지 중국식 작도법을 따른 획정법(劃井法)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왜냐하면 종래의 획정법은 중국처럼 평지가 많고 길이 직선으로 되어 있는 곳에서는 정확한 지도 제작 방법이 되지만,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고 길의 굴곡이 심한 땅을 그리는 경우에는 도로상의 거리와 직선거리상에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백리척은 바로 이러한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으로, 평지는 100리를 1척으로 계산하고 도로 굴곡이 심한 지역은 120~130리를 1척으로 하여 차등을 둠으로써 보다 실제에 가까운 직선거리를 계산해 낼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직선거리를 실측하지 않고서도 비교적 정확하게 지도상에 표현할 수가 있었다. 다시 말해 정상기는 실측된 직선거리가 없던 상황에서 오직 도로상의 거리만을 가지고 주변의 산천과 같은 지형적 요소들을 고려하여 각 주·현의 형태를 정확하게 그려냈다.

정상기의 백리척 지도가 나온 이후로 백리척 지도는 새로운 유행이 되었다. 신경준의 『동국여지도』(1770)를 비롯하여 해주정씨 가문의 정철조(鄭喆祚, 1730~81), 정후조(鄭厚祚, 1758~93) 형제가 그린 지도들이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다.
- 한영우·안휘준·배우성의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는 10월 28일까지 전시하는 특별전 <지도예찬 -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관련 정보)에서 쌍두마차로 내세운 작품은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정상기의 <동국대지도>입니다. 김정호는 그의 이야기가 소설과 영화로 꾸며져서(물론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정상기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상기 가문을 재조명하여 일반인들에게 소개한 이번 <지도예찬>전은 의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정상기 가문이 만든 여러 지도는 김정호가 그린 지도들에 견줘 정확성이나 예술성이 뒤떨이지지 않을 만큼 빼어납니다. 백두산에서 시작하는 백두 대간을 두드러지게 나타낸 <동국대지도>는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전시관 바닥에 5배쯤 확대한 동국대지도 위를 걸으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재미도 느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전시회를 볼 날이 앞으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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