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明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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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에서 언문으로, 그리고 한글로 독서

오늘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자는 한글입니다. 하지만 한글의 전신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한자를 주로 썼습니다. 그밖에 이두와 구결 따위를 보조 문자로 썼는데, 1443년에 훈민정음이 창제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자가 공용 문자의 지위를 잃은 때는 근대 이후였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요즈음에는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훈민정음은 한자를 밀어내지 못하였습니다. 하물며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새 문자를 만든 세종(世宗, 재위 1418~1450)조차 한자를 훈민정음으로 대체하겠다는 생각을 품지 않은 듯합니다. 그것은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에서 얼핏 드러납니다.

옛사람들은 문자라면 모름지기 한자처럼 '형(形, 꼴)'과 '음(音, 소리)'과 '의(義, 뜻)'를 두루 갖춰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를테면 꼴이 '天'인 글씨는 '천'이라는 소리와 '하늘'이라는 뜻을 지녔지요. 그런데 음소 문자로 뜻이 없는 훈민정음은 옛사람들이 보기에 제대로 된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세종이 새 문자의 이름을 '훈민정문(訓民正文)'이나 '훈민정자(訓民正字)'라고 짓지 않은 것은 당시 문자관을 반영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언문(諺文)'은 훈민정음을 속되게 이를지언정 문자로 받아들이는 의식을 담은 이름이었지만, 한자를 으뜸으로 치는 중세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이규상(李奎象, 1727~1799)이라는 이가 『일몽고(一夢稿)』라는 책에서 언문 사용은 늘어났으나, 한자 사용은 줄어든 세태를 언급할 만큼 언문은 세력을 시나브로 넓혔습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규상은 언문이 머지않아 공문서에 쓰이는 문자가 되리라고 전망하였습니다. 언문과 한자의 관계를 음양설에 기대어 바라보고, 살아가면서 언문을 거의 쓰지 않았을 법한 유학자마저 언문이 널리 퍼지는 게 순리라고 주장할 만치 변화의 흐름은 뚜렷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규상이 세상을 떠난 지 백 년이 채 되지 않아서 언문은 그가 예언한 대로 나라 글자라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대한 제국이 설치한 국문 연구소의 『국문연구안』 전권 표지(국가문화유산포털)

조선 조정은 1894년 갑오개혁에서 '국문(國文)'으로 부르기로 한 언문을 공문서에 적기로 했습니다. 언문이 제대로 된 국문으로 자리 잡은 때는 그보다 뒷날이었으며, 그때까지 우여곡절이 적잖았지만,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암글'이라며 업신여기던 언문이 마침내 나라 글자로 자리매김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한국의 문자들』(관련 정보)을 함께 쓴 국어학자 김하수 선생과 이전경 교수는 오랫동안 일상에서 언간과 소설책 등으로 언문을 읽고 쓰던 백성들에게 공을 돌립니다.

여러 논저에서 고종의 국문교서에 이르러 한글이 공식 문자로 사용된 것으로 평가하지만 이러한 교서를 가능하게 한 것은 저류에 흐르는 언문의 힘, 곧 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어리석은 백성'의 요구였다.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로 나온 『한국의 문자들』은 한문을 우리말 어순에 맞춰 바꾼 변체 한문부터 몇몇 학자가 한글의 미래로 구상한 풀어쓰기 한글까지 이 땅에 나타난 여러 문자를 훑어봤습니다. 이 책은 훈민정음, 언문, 한글을 구별하여 서술한 점이 특징입니다. 글쓴이들은 '궁중의 문자'로 태어난 훈민정음이 '세속의 문자'인 언문을 거쳐 '국가와 민족의 문자'인 한글로 다시 태어났다고 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ㆆ, ㅿ' 등 우리말을 적는 데 불필요한 자모는 사라졌고, 딱딱하던 서체는 부드럽게 바뀌었습니다. 또한, 어지럽던 맞춤법이 다듬어져서 표음주의보다 형태주의를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500여 년에 걸쳐 자기 변신을 거듭하였기에 한글은 근대화 과정에서 뿌리 뽑히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걸어온 길을 전통적으로 '천대 받으면서 가시밭길을 걸어온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각은 한글의 의미와 가치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스스로 각성하도록 하는 단계에서는 적절한 해석 방법이었을지 몰라도, 우리 문자가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면모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구중궁궐에서 귀공자로 태어났음에도 부귀영화를 멀리하고 이 세상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세상의 쓴맛 단맛을 모두 경험한 후에 진정한 우리의 언어 문화의 상징으로 거듭난 문자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한글은 수천 년에 이르는 문자사에서 후대에 등장한 문자입니다. 한글보다 늦게 만들어진 문자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한글은 젊은 문자이지요(관련 글). 우리는 한글을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생각합니다만, 한자나 알파벳보다 역사가 짧기에 한글은 좀 더 갈고닦아야 합니다. 기계화를 넘어서 디지털화를 이룬 현재 한글은 어떻게 진화할까요? 구중궁궐에서 나와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광장에 선 한글의 앞날을 꾸려나가는 일은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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