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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과 정관의 치세 역사

당 태종 이세민의 모습(위키백과)

당의 창업자는 고조 이연이지만, 수 말기의 반란 세력을 진압하고 실질적으로 창업을 주도했던 인물은 당 태종 이세민이었다. 고조의 둘째 아들이었던 그는 장안성 궁성의 북문인 현무문에 심복을 매복시켜 황태자인 형 건성建成과 동생 제왕 원길元吉을 살해한 후 아버지로부터 양위를 받아 29세의 나이로 황제가 되었다. 그의 정치는 후세 사람들에게 '정관의 치'라 높이 평가되었다. 치세 23년간 신하들과 나눈 문답을 기록한 『정관정요貞觀政要』는 후세 제왕학帝王學의 전범이 되었다.

그의 정치는 이상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치세 동안 국력은 끝내 수 때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그는 등극 과정에서 혈육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동생의 부인을 비妃로 끌어들인 패륜 행위를 서슴지 않음으로써, 후세에 주희로부터 이민족 출신이어서 패륜을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기도 햇다.

그의 이런 부도덕한 행위는 수 양제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럼에도 그는 천하의 명군으로, 양제는 폭군으로 후대에 정형화되었다. 이는 명군과 폭군의 구별이 반드시 공적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명군이 되려면 최소한 정치적 승자가 되어야 하고, 후손들이 오랫동안 계속 집권하여야 하며, 생애의 '뒤끝'이 좋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현종이 안사의 난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개원開元의 치'도 정관의 치 못지않게 평가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후세 역사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준 세 가지 조처를 단행했다. 첫째, 『오경정의五經正義』 편찬이다. 『오경정의』는 남북조 시대에 남과 북에서 각각 진행된 경서 해석에 대한 차이를 통일하여 혼란을 극복하고 바른 학문 체계를 정립한다는 명분으로 편찬한 것이지만, 경서 해석을 그의 정치 노선에 맞게 통일한 것이었다. 둘째, 『정관씨족지貞觀氏族志』의 편찬이다. 이는 당시까지 최고 문벌이었던 박릉 최씨의 서열을 끌어내리고 대신 황실과 외척을 1·2위에 놓음으로써, 남북조 시대 몇백 년 동안 내려오던 사회적 계층 질서를 황실 중심으로 바꾼 것이다. 셋째, 관찬官撰 역사의 선례를 열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던 역사의 사찬私撰 전통은 이로써 재상이 감수국사監修國史를 겸해 편찬 과정을 총괄하는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는 관례를 깨고 사관을 협박하여 자신의 '실록實錄'을 억지로 봄으로써 후세 역사가 정치의 시녀로 전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런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정치 수완과 그가 이룬 업적은 경시할 수 없다. 그는 북방의 강국 돌궐 제1제국을 630년에 멸망시킨 것을 계기로 서북방 여러 이민족 추장으로부터 '천가한天可汗'의 칭호를 얻었다. '천가한'이란 중국의 천자이자 오랑캐의 가한이라는, 즉 중원과 이민족을 통틀어 지배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당 태종은 이로써 농경과 유목 지역을 통괄하는 최고 통치자가 된 것이다. 이런 칭호는 무력으로 외적을 복속시킨 것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호와 월이 일가[胡越一家]'라는 그의 개명된 종족관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당 제국은 '만국내정萬國來庭' 혹은 '화이대동華夷大同'의 세계제국으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되었다.

내치에서도 국력의 풍성과는 거리가 있더라도, 제왕의 중요한 덕목인 용인用人과 납간納諫 등에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출신 배경이 다른 인재들을 모아 각기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도록 하였다. 그가 초치한 문학관文學館 '18학사'는 그의 즉위를 도왔을 뿐만 아니라 정관의 치세를 이끈 인재군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바로 '방[房玄齡]·두[杜如晦]'로 대표되는 '정관명신貞觀名臣'들도 모두 이들 집단에서 나왔다. 화가 염립본을 시켜 24명의 공신상을 그려 그들을 칭송한 것처럼 군주와 신하 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정립한 것도 당 태종의 장점 중의 하나였다.
- 박한제·김형종·김병준·이근명·이준갑의 『아틀라스 중국사』에서

직접 관람한 영화 <안시성>은 예고편을 봤을 때보다 괜찮았습니다. 특히 주필산 전투를 그린 영화 초반부에서 수만의 고구려군 중기병이 돌격하는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길 만큼 박진감이 넘쳤습니다. 화살이 날아와도 온몸을 감싼 갑옷 덕분에 큰 피해를 받지 않는 식으로 표현한 건 감탄사가 나왔지요. 기껏 그러고도 주·조연 배우들이 국적 불명의 갑옷을 걸치고, 투구 하나 쓰지 않은 채 싸움터를 누비는 모습은 황당했으나, 중기병의 장단점을 한꺼번에 보여 줬다는 것은 훌륭했습니다.

다만 <안시성>이 인물 묘사를 너무 단순하게 했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어느 전승에 따라서 '양만춘'으로 이름 붙인 안시성주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관계인 연개소문(淵蓋蘇文)이야 극 중에서 카메오나 다름없으니 둘째로 치더라도 주적인 당(唐) 제국의 황제 태종(太宗)이 매력 없는 악당으로 등장한 게 그러하였습니다. 영화 서두에서 '전쟁의 신'이라고 부르면서도 정작 '전쟁의 신'다운 면모가 보이지 않으니까 앞뒤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당 태종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었을지 모릅니다. 당 태종을 성군이나 명군으로 평가한 전근대 역사관을 그대로 따를 수 없지만, 그때까지 고구려가 맞이한 적들 가운데 최강은 당 태종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당 태종이 영화 설정대로 진짜 '전쟁의 신'처럼 나왔다면, <안시성>이 좀 더 좋은 평가를 받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안시성> 촬영진이 많이 참고하였음이 분명한 <킹덤 오브 헤븐>에서 본받았으면 좋았을 부분은 전투 장면보다 주인공과 싸우는 적임에도 마지막까지 품위를 잃지 않은 살라딘이어야 했지 않았을까요?

덧글

  • 진냥 2018/10/11 14:16 # 답글

    부족한 점이 없지도 않았지만 그 부족한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점이 매력이라는 느낌입니다!
    건륭제가 명 태조의 릉에 치륭당송의 비석을 세웠다는데 네가 당 태종을 알아?! 하고 시비 털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ㅎㅎ
  • 解明 2018/10/12 23:06 #

    병법에는 당 태종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아랫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다는 점에서 왠지 한고조가 떠오릅니다.
  • 남중생 2018/10/13 02:53 # 답글

    "농경과 유목 지역을 통괄하는", "호와 월이 일가[胡越一家]"... 여기에 연관해서 베트남 역사 쪽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소개해야겠네요.
  • 解明 2018/10/13 10:03 #

    당 제국 황실이 노자의 후손임을 자처하였지만, 대야(大野)라는 성씨를 쓰던 선비족일 가능성이 크지요. 설사 선비족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천진 군벌 출신으로 '선비화'한 한족일 테고요. '호월일가'라는 종족관도 이러한 집안 내력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남중생 2018/10/13 10:42 #

    오, 그렇군요. 당나라 건국세력이 이민족 출신이라는 말은 익히 들은 바가 있었지만, 사상적으로도 표현되어있을 줄을 몰랐습니다.
    사실 제가 소개하려는 이야기는 당나라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정식 학설이라기 보단 “베트남의 유사역사학”에 가깝지만, 시야를 넓혀준다는 의미에서 공유해보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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