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明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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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정권의 그림자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가? 독서

1961년 5월 16일부터 1993년 2월 24일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한 집단은 군대였습니다. 이때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전두환(全斗煥, 1931~), 노태우(盧泰愚, 1932~) 세 사람은 한때 군인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은 쿠데타로 집권하였으며,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한 뒤에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한 노태우는 전두환과 짜고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는 '원죄'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제4 공화국과 제5 공화국 사이에 군인 출신이 아닌 최규하(崔圭夏, 1919~2006)가 여덟 달 남짓 대통령직에 앉았을 때도 실권은 군인들이 쥐었습니다. 이렇게 군사 정권이 32년 동안 이어졌기에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려면, 좋든 싫든 군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군대는 폐쇄성이 강한 조직이기에 그 속을 들여다보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鄭鎬溶, 1932~) 등 육군 사관 학교(이하 육사) 11기들이 주도하여 결성한 하나회가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하였음에도 일반인들은 1980년대 후반까지 하나회라는 사조직이 군에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12·12 군사 반란은 하나회 소속 군인들이 정권을 빼앗으려고 일으킨 하극상이었다는 진실도 반란이 일어나고서 한참이 지나서야 밝혀졌지요. 정치군인들이 저지른 온갖 추태는 '군사 기밀'과 '국가 안보'라는 미명으로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93년 2월 25일에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김영삼(金泳三, 1927~2015) 전 대통령이 그때까지 군의 요직을 독차지하다시피 하던 하나회를 숙정하면서 오랫동안 감춰진 정치군인들의 실체가 하나씩 하나씩 드러났습니다. 군정이 끝났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정치학자인 김재홍(金在洪, 1950~) 선생이 쓴 『군』은 군부 독재 시기에 군대와 얽힌 여러 비화를 담은 논픽션입니다.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던 글쓴이가 문민정부가 출범한 무렵에 맞춰 신문에 연재한 글을 묶은 이 책은 1994년에 두 권의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정치장교와 폭탄주'라고 부제를 단 1권(관련 정보)에서는 '금배지'들이 '별'들에게 술자리에서 얻어맞을 만큼 여당 국회 의원보다 육군 장성의 위상이 높던 제5 공화국의 시대상을, '핵개발 극비작전'이라고 부제를 붙인 2권(관련 정보)에서는 인권 외교를 내세운 미국 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주국방 계획 따위를 그렸습니다. 하나같이 호사가들이 좋아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열한 장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을 꼽자면,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두 번째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12·12 군사 반란 주동자들이 1979년 12월 14일 국군 보안 사령부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위키백과)

10·26 사건 이후 수도 경비 사령부(이하 수경사)를 맡은 장태완(張泰玩, 1931~2010) 장군과 하나회의 오래된 악연, 당시 국군 보안 사령부(이하 보안사)의 사령관인 전두환이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비롯하여 자기를 위협할 가능성이 큰 장군들에게 유인책을 쓰는 모습, 허삼수(許三守, 1936~, 육사 17기)가 전두환이 명령한 대로 정승화(鄭昇和, 1929~2002) 육군 참모 총장을 납치하는 장면, 직속 부하인 조홍(趙洪, 1933~, 육사 13기)·장세동(張世東, 1936~, 육사 16기)·김진영(金振永, 1938~, 육사 17기)이 반란군이었음을 깨달은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분노, 수경사 야포단 병력이 한강 이남에 발이 묶인 사이에 하나회 회원인 박희도(朴熙道, 1934~, 육사 12기)가 이끄는 제1 공수 특전 여단이 행주 대교를 건너는 순간, 반란군의 눈과 귀가 된 보안사가 진압군을 상대로 벌이는 공작 활동, 군사 반란을 진압하는 데에 끝내 실패한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허탈한 심정 등. 글쓴이는 음모와 배신 그리고 암투가 펼쳐진 12·12 군사 반란 현장을 긴박감 넘치는 문장으로 썼습니다. 논픽션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만합니다.

장사령관은 9공수단이 회군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9공수병력만 도착하면 전차 4대를 앞세워 경복궁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공격개시선에 집결된 부대를 점검해나가는 그에게 비서실장 김수택 중령이 달려와 귀에 대고 다급하게 보고했다.

"사령관님, 제가 저앞 전차 소대쪽에 갔더니 '장태완을 사살하라'는 무전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빨리 이 곳을 떠나 사령부 안으로 피신하셔야겠습니다."

그는 허리에 찬 권총에 손이 갔다.

"뭐라구. 이런 배신자집단 같은 놈들……."

사령관으로 취임한 지 불과 36일.

그는 직감적으로 수경사가 자신의 부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급상황에서 지휘관에게 언제 배신할지 알 수 없는 부하처럼 무서운 적은 없다. 그는 비서실장과 함께 황급히 집무실로 들어갔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겪은 일이 보여 주듯이 진압군은 다수였음에도 반란 세력이 곳곳에 숨은 탓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전두환의 심복인 장세동이 단장으로 있는 수경사 제30 경비단이 하나회에 들어간 게 치명타였습니다. 김재홍 선생은 12·12 군사 반란이 '펑퍼짐한 연합체격'인 육군 본부와 '응집력 있는 정예조직'인 제30 경비단의 대결이었다고 봤는데, 둘이 싸워서 어느 쪽이 이길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기생 생물처럼 군을 숙주로 삼은 하나회는 어떤 무리였을까요?

하나회는 뿌리는 영남 출신 육사 11기 생도들의 친목회인 오성회(五星會)였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金復東, 1933~2000) 등 '별'이 되기를 꿈꾸던 다섯 생도는 오성회를 만들고, '용성(勇星)'이니 '관성(冠星)'이니 '여성(黎星)'이니 하는 별명을 지었습니다. 자못 맹랑하지만, 사관생도의 패기만만함으로 여긴다면, 너그러이 넘어갈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비뚤어진 선민의식이었습니다.

육사 11기는 육사에서 처음으로 4년제 정규 교육을 마쳤다고 해서 '정규 육사 1기'임을 자처하였습니다. 단기 교육을 받고 장교로 임관한 육사 선배들과 자기들은 다르다는 뜻이었습니다. 자부심이 지나친 나머지 자기들은 그런대로 안전한 후방 지대에서 교육받을 때 선배들은 전장에서 피를 흘리며 싸웠음을 그들은 잊었습니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애송이 장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세를 넓히던 오성회가 칠성회(七星會)와 일심회(一心會)를 거쳐 하나회가 되면서 육사 11기들은 군의 주류가 됩니다. 1973년, 이른바 윤필용 사건을 조사하던 보안사령관 강창성(姜昌成, 1927~2006, 육사 8기) 장군은 하나회의 존재를 알고 수사에 나섰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친위대'로 키우던 하나회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위기에서 벗어난 하나회는 승승장구하며, 12·12 군사 반란으로 '박정희가 없는 박정희 체제'를 이루며 정권을 잡기에 이릅니다. 글쓴이는 책에서 하나회를 가리켜 '군부 귀족'이나 '군부 성골'이라고 부르는데,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12·12쿠데타 후에는 하나회가 군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군사정권을 세우는 집권세력이 됐다. 군부 내에서 소수였지만 조직화된 하나회가 비조직화된 다수 장교들을 지배할 수 있었기에 12·12거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국가통치권의 공백상태 속에서 소수세력이지만 가장 조직화된 권력집단이 보안사였다. 중앙정보부는 대통령살해집다으로 무장해제당했고, 청와대 경호실도 차지철 실장이 피살된데가 차장인 이재전(李在田·육사 8기) 중장은 직무유기혐의로 합수부에 구속돼 풍지박산이 났다. 수경사는 무력대결에서 패한 상태.

결국 전두환,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등 하나회 핵심이 틀어쥔 보안사가 군과 국가통치권 구조를 통틀어 가장 조직화된 집단이었다.

이렇게 해서 조직화된 소수가 비조직화된 다수를 힘으로 지배하는 '하나회 공화국', 5공과 6공이 태어났다.

국군 기무 사령부(이하 기무사)가 일반인을 사찰하고, 댓글 부대로 여론을 조작하고, 계엄령을 준비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등골이 섬뜩한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관련 기사). 보안사가 기무사로 간판을 바꿨어도 '권력의 충견'이라는 본성을 바꾸지 못했음을 보여 준 셈인데, 여기에 하나회 같은 군 내 사조직인 알자회의 이름이 어른거리니 1979년과 1980년을 안 떠올리려야 안 떠올릴 수 없습니다(관련 기사). 옛일이 된 '하나회 공화국'의 부활을 꾀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아직 우리 사회가 군사 정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하는 듯합니다. 정부가 기무사를 '해편(解編)'해 '군사 지원 안보 사령부'로 이름을 간다고 한다지만,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정치군인들을 군에서 몰아내지 않는다면, 개혁으로 가는 길은 까마득해 보입니다.

이제는 절판된 『군』을 읽으면서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알아야 하는 까닭을 새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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