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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가야의 역사 되살리기 독서

언론인이면서 역사학자로도 업적을 쌓은 천관우(千寬宇, 1925~1991) 선생의 『가야사연구』(관련 정보)는 1970년대 중후반 이곳저곳에 발표한 원고들을 묶어서 펴낸 유고집입니다. 가야사와 백제사 그리고 고대 한일 관계사를 폭넓게 다룬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글은 「복원 가야사」입니다. 계간지 『문학과 지성』에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 「복원 가야사」는 제목 그대로 가야사를 복원하려고 시도한 논문입니다. 가야인들이 남긴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 한 탓에 가야사 연구가 지지부진하던 시기, 천관우 선생은 안개에 싸인 가야의 흥망성쇠를 그 나름대로 체계 있게 그렸습니다. 특히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사료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는 점이 남달랐습니다.

『일본서기』는 '이주갑인상(二周甲引上)'이라고 하여서 120년씩 시간을 앞당긴 기사가 적잖은 데다가 황당한 이야기가 많아서 미덥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서기 200년에 섭정인 진구[神功] 황후가 만삭의 몸임에도 신의 가호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 신라를 쳤고, 그 소식을 안 고구려와 백제의 왕이 제풀에 꺾여 무릎을 꿇었다는 기록은 『일본서기』의 성격이 어떠한지 보여 줍니다(관련 자료). 허무맹랑한 서사 구조는 둘째로 치더라도 연대에 맞지 않는 용어와 인물이 튀어나와서 한눈에 봐도 거짓임을 알아차리게 합니다. 이사금(尼師今)이 왕호로 쓰이던 때에 신라의 임금을 매금(寐錦, 마립간)으로 일렀고, 5세기 전후에 활동한 미사흔(未斯欣)이 미질기지파진간기(微叱己知波珍干岐)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이쯤 되면 역사서라기보다 소설책에 가깝다는 느낌입니다. 역사학자들이 『일본서기』를 사료로 이용하기를 꺼리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일본서기』에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찾아보기 힘든 가야와 백제 관계 기사가 많이 담겨서 아예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대가야를 가리키는 반파가 섬진강 유역 일대로 들어오려는 백제와 충돌하고 낙동강 유역을 넘어서 신라와 격돌한 일은 다른 문헌에서 보이지 않는 내용입니다(관련 자료). 『일본서기』에서만 보이는 기록이지요. 『일본서기』 편찬자가 여기에 왜(倭)가 깊이 개입한 양 서술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으나, 과장과 윤색을 걷어 낸다면, 5세기 전반 한반도 남부에서 벌어진 정세가 엿보이는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천관우 선생은 1970년대 이전까지 이병도(李丙燾, 1896~1989) 박사 등 몇몇 학자가 제한적으로 다루던 『일본서기』의 가치에 새삼 주목했습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의 목곽묘에서 발굴된 파형동기(연합뉴스)

천관우 선생은 『일본서기』 원문의 왜를 백제로 고쳐 읽어야 모순되는 문맥이 자연스럽게 풀린다고 말하였습니다. 『일본서기』를 거꾸로 보면, 왜의 임나(任那, 가야) 지배란 실은 백제의 가야 지배였다는 사실과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정체가 드러난다고 주장했지요. 이 주장은 목라근자(木羅斤資) 등으로 하여금 가야 7국을 '평정'하게 한 주체는 진구 황후가 아니라 근초고왕(近肖古王)이었으며, 임나일본부는 야마토[大和] 조정이 세운 기구가 아니라 가야 지역에 주둔한 백제군 사령부였지만, 사서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왜곡과 변조가 일어났다는 추정으로 이어집니다.

『日本書紀』의 韓半島(한반도) 관계기사는 일반적으로 百濟(백제)를 특수한 의식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百濟 관계기사의 이러한 특징은, 『日本書紀』 變造(변조)의 배경을 어렴풋이나마 추측게 한다.

그것은, 『日本書紀』의 편찬 과정, 혹은 그 原資料(원자료)에서 百濟系(백제계) 倭人(왜인)이 중요한 구실을 했으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百濟系 倭人의 조상들이 母國(모국) 百濟에서 활동했던 일들을, 마치 그들이 倭地(왜지)에서 百濟로 건너가서 그렇게 활동한 것인 양, 『日本書紀』에서 變造를 했든가, 아니면 일찍부터 그렇게 變造되어 있던 傳承(전승)이 『日本書紀』 原資料로서 제공되었든가 했으리라는 것이다.

물론 글의 주어를 바꿔도 문제는 남습니다. 『일본서기』 편찬자는 '백제삼서(百濟三書)'라고 불리는 『백제기(百濟記)』, 『백제신찬(百濟新撰)』, 『백제본기(百濟本記)』를 자주 인용하였습니다. 백제계 사료를 참고했다는 사실은 왜를 세계의 중심으로 삼은 『일본서기』의 소중화 사상을 한 꺼풀 벗기면, 그 밑에 백제의 천하관이 숨었음을 암시합니다. 마한의 침미다례를 '남만(南蠻)'이라고 낮잡아 이른 예가 그것을 잘 나타냅니다. 왜가 아닌 백제의 시각을 반영했기에 '서융(西戎)'이 아닌 '남만'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지요.

『일본서기』에 가야계 사료에서 비롯한 듯한 기록이 없지 않지만, 드뭅니다. 따라서 가야의 역량이 실제보다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를 백제로 뒤집는 식의 독법이 가야보다 백제를 중심에 놓았다고 비판받을 만한 대목입니다. 그렇지만 천관우 선생의 연구를 계기로 하여 『일본서기』를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일본인들이 제시한 임나일본부설에 제대로 된 반론이 나오게 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야사연구』에서 천관우 선생이 되살린 가야의 역사는 지금 봐도 독특합니다. 요동반도에 있던 북진번(北眞番)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남진번(南眞番)이 되었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서 진한과 변한이 되었다거나 수로왕(首露王)이 죽은 뒤인 3세기 초에 금관가야의 주력이 일본 열도로 빠져나가면서 가야가 약화하였다는 가설은 이채로운 면모를 더합니다. 교과서에 실릴 법한 고대사 통설과 사뭇 다른 역사상(歷史像)입니다. 그래서 선뜻 수용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진번을 남북으로 갈라도 좋은지, 진·변한의 전신으로 여겨도 좋은지 의심스럽습니다. 진·변한에 북방에서 이주한 사람이나 그 후손이 살았음은 분명합니다만, 나라가 고스란히 옮겨 왔다고 할 만큼 대이동이 있었을까요? 또 금관가야의 지배층이 일본 열도로 떠난 까닭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금관가야을 가리키는 구야국의 신지(臣智)에게 '구야진지렴(狗邪秦支廉)'이라는 칭호를 더하여 우대했다는 『삼국지(三國志)』 기록을 살펴보면(관련 자료), 3세기에 금관가야가 약화한 흔적은 없습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의 발굴 결과로 미루어 헤아려 보건대 금관가야는 3세기 이후 약화하기는커녕 중국 군현과 일본의 여러 소국을 잇는 중계 무역으로 4~5세기에 번영을 누렸습니다. 고고학 발굴 성과가 충분히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문헌 사료에 기댄 연구가 한계를 드러냈다고 해야겠지요.

하지만 조기(전기) 가야의 중심을 김해로, 만기(후기) 가야의 중심을 고령으로 파악한 것은 시대를 앞서간 의견이었습니다. 이러한 도식은 '가야 연맹'에서 벗어나 '가야 각국'으로 가야사 인식의 틀이 바뀐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야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어느 때보다 늘어난 요즈음 가야사 연구의 선구가 된 천관우 선생의 책을 읽으며, 한국 고대사에서 가야는 어떤 존재였는지 생각해 봅니다.

첨언 하나. 인용문에서 한자 뒤 한글 병기는 인용자가 했습니다.

덧글

  • 남중생 2018/07/12 00:04 # 답글

    백제의 입장에서 "남만"이라... 흥미롭습니다!
  • 解明 2018/07/12 00:37 #

    천관우 선생의 학설을 수용한 김현구 교수는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에서 '남만'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또 가야 7국 평정의 주체가 일본이 아니고 백제라는 사실은 목라근자 등이 "남만 침미다례"를 취해서 백제에게 주었다는 표현으로도 알 수 있다. "남만 침미다례"에서 '남만'은 '침미다례'의 방향을 표시하는 말인데, 침미다례는 백제의 입장에서 본다면 '남만'이 되지만, 일본의 입장에서 본다면 '서만'이 된다. 이로써 침미다례나 가야 7국을 평정한 주체는 백제였음을 알 수 있다. '남만'이라는 표현은 가야 7국 평정의 주체를 일본으로 바꿔 쓰면서 부주의로 남겨놓은 하느님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역사를 완벽하게 날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 진냥 2018/07/12 03:06 # 답글

    복붙은 조심해서... 라는 역사의 교훈이로군요....
  • 解明 2018/07/12 16:31 #

    그런데 김현구 교수는 천관우 선생과 다르게 『일본서기』 편찬자가 기록을 일부러 조작하려고 한 것은 아닌 듯하다고 말합니다. 정말 조작하려고 했다면, 저렇게 엉성하게 해서 들통나게 했느냐는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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