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明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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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에서 '미추홀구'로 언어

'남구청'에서 '미추홀구청'으로 바뀐 간판 글씨(연합뉴스)

인천시 남구가 지난 7월 1일부로 미추홀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관련 기사). 수십 년 동안 쓰던 명칭을 자치구에서 알아서 바꾼 데다가 인천의 옛 지명인 '미추홀'을 되살려 썼기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한 사건이었지요. 미추홀구 출범에 발맞춰 KBS는 7월 4일에 특집 다큐멘터리 <미추홀, 2000년 만의 부활>을 방영하였습니다. 인천의 역사를 톺아보면서 명칭 변경의 의미를 새겨보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방송이었습니다.

방송에서는 '미추홀'의 역사와 함께 어원도 다뤘습니다. '미추홀(彌鄒忽)'을 '매소홀(買召忽)'로도 적는다는 사실에서 착안하여 물의 성을 뜻한다는 견해(관련 글)를 비롯하여, '미추'를 밑바탕을 뜻하는 말로 추정해서 고대에 인천이 백제 도읍으로 출발하였음을 강조하는 또 다른 견해도 소개하였습니다. '미추'가 밑바탕을 뜻한다는 근거가 뚜렷하지 않아서 후자보다 전자가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만, 비류(沸流)가 나라를 세운 사실과 지명의 유래를 연결 지어서 재미있습니다.

다만 저는 '미추홀'이 백제인들의 호칭을 그대로 옮겨 쓴 표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접미사처럼 쓰인 '홀'은 4세기 말부터 남하하여 한강 유역 일대를 점령한 고구려 측에서 붙였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한성 백제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홀'보다 '책구루(幘溝漊), 치구루(置溝婁), 미구루(味仇婁)' 같이 '구루'가 들어간 지명이 쓰였으므로 '미추홀'은 5세기 이전 이름으로 안 보입니다. <광개토왕릉비>에는 미추홀을 가리키는 듯한 '미추성(彌鄒城)'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아마 백제인들은 비문에 적힌 대로 고유어와 한자어를 섞은 '미추성'이라고 불렀을 성싶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고구려인들은 '미추성'을 고구려식으로 바꿔 '미추홀'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삼국사기(三國史記)』 등 문헌 기록을 통해 미추홀을 인천으로 비정한 통설을 부정하는 주장도 흥미로웠습니다. 방송에 출연한 김기섭 교수는 양주의 옛 이름인 '매성(買省)'이 '매소홀'과 음이 비슷하다고 지적합니다. 또 김 교수는 임진강 유역 일대에 풍납토성을 떠올리게 하는 평지 토성이 여럿 있다는 점을 근거로 삼아 미추홀은 인천이 아닌 양주나 파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윤용구 박사가 반박했듯이 비류가 바닷가에서 살고자 하였다든가 미추홀이 땅은 습하고 물은 짰다고 한 백제 건국 설화 내용을 미루어 보면, 미추홀이 바다 가까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파주나 양주가 미추홀이라고 하기에는 서해에서 거리가 제법 떨어졌다는 게 문제입니다. '어을매(於乙買)'와 '어을매곶(於乙買串)'처럼 명칭만 비슷할 뿐 행정 구역은 다른 예도 있듯이 음상사한 지명만으로 위치를 비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임진강 유역의 백제식 평지 토성도 지금의 경기도 북부가 한때 백제 영역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그 존재가 이상하지 않습니다. 즉 미추홀은 인천이라는 통설은 아직 굳건합니다.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이름인 미추홀이 인천 시민들에게 익숙해지려면,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적잖은 혼란을 겪겠지요. 그렇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지명이 좀 더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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