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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산 땅굴 전시관을 다녀와서 역사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분위기가 험악해지던 1930년대 후반부터 일본은 공습에 대비한 훈련을 강화하고, 방공호를 건설하도록 독려했다. 백화점에 방공호 모형을 전시해서 관람하게 하는 등 한반도에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전세가 악화되자 본격적인 방공호 건설에 나섰다.

(중략) 한반도의 중심지이자 최대 인구밀접지역인 경성에도 곳곳에 방공호가 건설됐다. 그중 일부는 삼청동과 장충동 지역에 남아 있다. 일본은 미군의 공습이 본격화되자 폭격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 주거지를 강제로 철거하고 공터를 만들기도 했다. 경희궁 역시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44년, 숭정전 동쪽에 있는 내전인 회상전 자리에 대규모 방공호가 건설된 것이다. 시민들이 공습을 피해 대피하는 용도를 넘어선 대규모의 방공호였다. 건설 작업에는 당시 경성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학생들이 동원되었다.
- 정명섭·신효승·조현경·김민재·박성준의 『일제의 흔적을 걷다』에서

지난 6월 23일, 주말을 맞아 궁산 땅굴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에 유일하게 남은 향교인 양천 향교가 자리 잡은 궁산에서 일제가 1940년대에 판 것으로 보이는 땅굴이 발견된 해는 10년 전인 2008년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일보』 기사를 보면, 100여 명의 주민이 동원되어 1년 동안 땅굴을 파다가 일제가 패망하면서 작업이 중단되었다는 관련자의 증언이 나옵니다(관련 기사). 땅굴에서 빈민들이 살거나 청소년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따위의 여러 문제가 생기자 구청에서 땅굴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눈에 띕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1980년대 즈음까지만 하더라도 구청에서 땅굴을 (거의 내버려 두다시피 했지만) 관리한 듯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땅굴 폐쇄 이후에 땅굴의 존재 자체가 잊히면서 거기에 얽힌 사연이 오랫동안 풍문으로 떠돌았습니다.

2008년 발견 당시 궁산 땅굴의 모습(연합뉴스)

2010년에 궁산 땅굴에 전시관을 만들겠다며 기공식까지 치렀지만,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다시 땅굴을 막았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서 궁산 땅굴 전시관은 최초 계획보다 규모를 축소해서 개관하였습니다. 땅굴 안에 들어갈 수는 없고, 밖에서 바라볼 수만 있어서 아쉽습니다. 벽에 걸린 설명문을 꼼꼼히 읽어도 10분 넘게 머물기 쉽지 않습니다. 북한이 남침하려고 판 땅굴을 관람하는 기분을 이곳에서 느끼기를 기대한다면, 실망하기에 십상입니다.

물론 일제가 우리 땅에 남긴 상처가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궁산 땅굴 전시관은 무의미한 공간이 아닙니다. 궁산에서 가까운 김포 국제공항이 1938년에 일본군이 건설한 활주로에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듯이 우리 둘레에는 일제의 유산이 적잖습니다. 또 일제가 서울 경희궁의 전각을 헐어 내고 지은 방공호나 제주도 성산 일출봉에 뚫은 동굴 진지 등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곳입니다. 대동아 공영권을 이루겠다는 헛된 꿈이 무너졌음에도 그들은 무엇을 지키겠다고 일본 열도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까지 요새로 만들었을까요? 어두운 땅굴 안쪽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글

  • 남중생 2018/07/07 23:36 # 답글

    역사의 심연을 들여다 볼수 있는 경험이군요...
    그나저나 "백화점에 방공호 모형을 전시해서 관람하게 하는 등 한반도에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니 게임 폴아웃 시리즈의 볼트테크 광고가 연상되네요.^^
  • 解明 2018/07/08 00:04 #

    https://www.bigkinds.or.kr/resources/OLD_NEWS_IMG3/MIN/MIN19410226v00_03.pdf

    인용문에 링크한 뉴스에도 잠깐 언급하지만, 1941년 2월 26일 자 『매일신보』에는 「방공호는 이렇게」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를 찾아서 읽어 보니 조선총독부 경무국 방호과에서 주관하여 6월 25일부터 3월 2일까지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에서 전람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방공호 모형 십수 점을 진열품으로 전시하였고, 관람객에게 방공호 만드는 방법을 담은 책자를 나눠 줬다는군요. 관람객들이 진열품을 구경하는 사진도 곁들었습니다. 그야말로 광기의 시대였네요.
  • 도연초 2018/07/08 10:23 # 답글

    일본 열도 안에도 저런 땅굴이 수도 없이 있을 겁니다.

    대표적으로 천황 등 수뇌인사의 방공호로 공사중이었다 미완성으로 종전을 맞이한 나가노현 마쓰요쵸의 신 대본영 터라거나... 아무나 갈수 없는 데라면 이오지마의 땅굴도 있겠지요.(그거 말고도 태평양일대에 일본군이 남긴 땅굴이 한둘이 아닐테지만)
  • 解明 2018/07/08 16:31 #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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