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明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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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와 1970년대의 농촌 풍경을 바라보며 독서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신경림(申庚林, 1936~) 시인이 낸 첫 시집의 표제작이 된 <농무(農舞)>는 풍물놀이가 끝난 자리를 비추며 글문을 엽니다. 한바탕 신명 나게 놀았다는 흥성거림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얼굴에 분을 바르고 농악무를 열심히 춘 춤꾼들도 기운이 빠졌는지 막이 내린 무대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술부터 찾습니다. 고달픈 삶에 지친 몸을 이끌고 장거리를 돌던 그들은 마지막으로 흥을 돋우려고 애씁니다만, 분위기는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습니다.

<파장(罷場)>이 풍기는 냄새도 그것과 비슷합니다. 제목 그대로 시장이 끝난 때에 벗들을 만난 시적 화자는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면서 너스레를 떨지만, 이내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로 시름에 잠깁니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시적 화자는 "절뚝이는"데, "절뚝이는" 것은 비단 발걸음만이 아닌 듯싶습니다.

시집 『농무』(관련 정보)에 실린 시들이 그린 1960~1970년대 농촌 풍경은 어둡습니다. 겉으로는 '조국 근대화' 덕분에 "양곡 증산 13·4프로에 / 칠십 리 밖엔 고속도로"(<오늘>)로 발전한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곪고 덧나 사람들이 영 맥을 못 춥니다. 농사를 지어도 비룟값도 안 나오는 현실에 눌려 농촌 사람들은 왜소합니다. <씨름>에서 "깡마른 본바닥 장정"이 타지에서 온 씨름꾼에게 오기로 덤벼도 "나가 떨어지"자 "해마다 지기만 하는 씨름판"에 익숙해진 듯하면서도 풀 죽은 마을 사람들의 초상은 날이 갈수록 졸아드는 농촌의 어려움을 보여 주는 우화처럼 읽힙니다.

1974년, 사진가 정정회가 전남 곡성에서 촬영한 사진(고은사진미술관)

농촌 사람들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합니다. 『농무』에는 그들이 틈만 나면 '섰다'니 '육백'이니 '갑오'니 하는 여러 가지 화투 노름을 벌이거나 걸핏하면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이 곳곳에 나와서 음주와 도박으로 현실에서 도피하던 세태를 짐작하게 합니다. 누군가는 "해만 설핏하면 아랫말 장정들이 / 소줏병을 들고 나를 찾아" 와서 술을 마시다가 문득 "먼 도회지로 떠날 것을 꿈꾸"지만(<실명(失明)>), 도시에서 산다고 해서 살림살이가 하루아침에 나아질 리 없습니다.

<처서기(處暑記)>의 시적 화자는 동향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처서가 오기 전에 어디 공사장을 찾아 / 이 지겨운 서울을 뜨자고 벼려댔"지만, 뜨개질로 밥벌이하는 아내의 "초췌하고 고달픈 얼굴"을 보는 순간 서울을 떠나겠다는 의지가 꺾입니다. 사실 "아아 이곳은 너무 멀구나, 도시의 / 소음이 그리운 외딴 공사장"이라고 탄식하는 어느 노동자의 모습(<원격지(遠隔地)>)을 보면, 그는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지겨움을 견디지 못하고 서울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에 <골목>에 등장하는 이발사 최씨는 "그래도 서울이 좋"다는 이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최씨를 둘러싼 환경은 너무 궁상맞아서 빈말이라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동네에서는 쉴 새 없이 싸움이 일어나고, 사람들 마음은 강퍅하며, 최씨의 아들은 장애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씨 본인이 알코올 의존자입니다. "그래도 서울이 좋"다는 최씨의 말은 왠지 서울에 마지못해서 사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주문처럼 들립니다. 가뭇한 이촌향도의 풍경화입니다.

그래도 농촌에 남은 사람들은 집단행동으로 현실을 바꿔 보려고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습니다. '겨울, 먹구름, 진눈깨비'가 상징하는 권력에 그들은 깨지고 부서져 흩어집니다.

사람들은 모두 장거리로 쏟아져 나와
주먹을 흔들고 발을 굴렀다
젊은이들은 징과 꽹과리를 치고
처녀애들은 그 뒤를 따르며 노래를 했다
솜뭉치에 석유불이 당겨지고
학교 마당에서는 철 아닌 씨름판이 벌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겨울이 와서
먹구름이 끼더니 진눈깨비가 쳤다
- <폭풍>에서

시집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시가 적잖습니다. "트럭이 와서 바깥 마당에 멎었는데도" 네 아버지가 죽던 날을 잊었느냐고 아침부터 주정하는 <잔칫날> 속 당숙의 취담은 왠지 한국 전쟁 당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떠올리게 합니다. <1950년의 총살(銃殺)>은 "1950년 가을 / 죄없는 무리 2백이 차례로 / 쓰러질 때, 분노하라 하늘이여 이 / 강의 한 줄기를 피로 바꾸어라."라는 구절로 그것을 더욱 또렷이 나타냅니다. "그날 끌려간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고 "전쟁이 끝났는데도 마을 젊은이들은 하나하나 사라져선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증언하는 <폐광(廢鑛)>과 "전쟁통에 맞아 죽은 육발이"의 처가 해장국을 끓이는 <경칩(驚蟄)>에도 전쟁의 비극이 아른거립니다.

"눈 오는 밤에 가난한 우리의 / 친구들이 미치고 다시 / 미쳐서 죽을 때"나(<산읍일지(山邑日誌)>) "쓸쓸히 살다가 그는 죽었다"처럼(<묘비>) 사인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제(時祭)>에서 "돗자리 위에 웅크리고 앉은 아저씨들은 / 까칠한 얼굴로 시국 얘기를 한다 / 그 겁먹은 야윈 얼굴들"을 통해 숱한 죽음이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음을 암시하지만, 시적 화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20년이 지나도 고향은
달라진 것이 없다 가난 같은
연기가 마을을 감고
그 속에서 개가 짖고
아이들이 운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외쳐 댄다
말하라 말하라 말하라
아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양심의 외침을 외면하고, 침묵하지 않을 수 없던 시대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죽음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혔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제가 『농무』에 담긴 정서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하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신경림 시인이 산문에 버금갈 만큼 실감 나게 묘사한 덕분에 그때 그 시절 농촌 사람들이 느꼈을 좌절과 절망이 난해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제1회 만해문학상 심사를 맡은 김광섭(金珖燮, 1905~1977) 시인이 "그는 시의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리얼한 데서 시의 감동을 찾는다"라고 평가한 까닭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농무』가 거둔 사실성의 성과는 오늘날 읽어도 새로운 느낌을 줍니다.

덧글

  • 해색주 2018/06/13 22:20 # 답글

    시골에서 자라고 커서 그런지 저런 느낌이 익숙하네요. 그나마 수도권 이내에 있는 곳이라서 지금은 도시도 시골도 아닌 어중간한 곳이 되었네요. 그래도 신도시 생기면서 마을 자체가 사라진 곳도 주변에 많으니 그나마 만족합니다.
  • 解明 2018/06/14 08:10 #

    저는 논에서 벼가 누렇게 자라는 모습이 보이는 서울 변두리에 살았는데, 이제 논이 다 없어지고 크고 높은 건물이 들어서니 상전벽해를 실감합니다.
  • 남중생 2018/06/13 23:19 # 답글

    신경림 시인의 다른 시와 함께 보니 더욱 절절하네요.
  • 解明 2018/06/14 08:12 #

    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닙니다만, 시 한 편만 읽기보다 시집에 실린 시 여러 편을 함께 읽어야 시와 시인을 이해하기 수월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표작보다 더 눈길이 가는 다른 작품을 찾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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