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明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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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역사학은 왜 문제가 되는가? 독서


오늘날 평양에 낙랑군(樂浪郡)이 있었다고 하는 역사학계의 통설은 식민주의 역사학을 추종하는 것이다.

백 권이 넘는 책을 쏟아 내면서 일반인들의 역사관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이덕일 소장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이러한 주장을 펼칩니다. 그들은 또 말합니다. 낙랑군은 대동강이 아닌 롼허[滦河]강 연안에 있었으며, 고조선의 강역은 중원까지 깊숙이 뻗었었노라고.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덕일 소장은 이른바 한사군(漢四郡)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설은 일제의 날조라고 역설하지만, 처음부터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 안으로 비정한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시대 학자인 한백겸(韓百謙), 유형원(柳馨遠), 유득공(柳得恭), 정약용(丁若鏞), 한진서(韓鎭書)는 진번군(眞番郡)이 한반도 안과 밖 어디에 있었는지를 놓고 이견을 내놓았을지언정 낙랑군이 평안도 일대에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는 견해가 일치하였습니다. 이익(李瀷)처럼 낙랑군이 중국 요동 지방에 있었다고 여긴 이도 없지 않았으나, 그의 의견은 후배인 정약용과 한진서가 잘못되었다고 따질 정도로 소수설에 머물렀습니다.

또한, 고려 시대의 일연(一然) 스님도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편찬하면서 국내외 자료를 살펴본 끝에 "낙랑은 곧 평양성이란 말이 옳을 듯하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일제 어용학자인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이나바 이와키치[稲葉岩吉],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시간을 달리기라도 한 게 아니라면 '한사군 한반도설'이 식민주의 역사학이라는 논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전근대 인물인 일연 스님이나 정약용이 식민주의 역사학이라는 걸 알 리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사진으로 공개한 낙랑군 인구 조사 목간(연합뉴스)

고고학 발굴 조사도 낙랑군이 평양에 위치하였음을 뒷받침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樂浪'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와 봉니가 평양에서 나오면서 낙랑군의 치소인 조선현이 평양에 있었음이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이덕일 소장이야 당연히 일제가 이 유물들을 조작하였다며 믿지 않습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식민지 조선이 해방된 이후에도 평양에서는 많은 수의 낙랑군 유적과 유물이 계속 발굴되었습니다. 이를테면 1990년에 평양 락랑 구역의 어느 무덤에서는 목간이 나왔는데, 이 목간에는 서기전 45년 낙랑군에 소속된 25개 현의 현별 호구 통계가 기록되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일제가 수천여 기의 낙랑 고분을 만들어내고, 그 속에 엄청난 양의 물품을 집어넣었다고 한다면, 당시 일본인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일제가 그만한 힘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가 실재하였음을 증명하는 증거는 왜 꾸며 내지 않았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일제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기에는 낙랑군보다 임나일본부가 안성맞춤일 텐데, 임나일본부를 옆으로 제쳐 놓고 낙랑군을 먼저 조작했다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심지어 김해나 고령이 평양보다 일본 열도에서 더 가까운 곳에 있는데 말이지요. 결국, 별다른 증거도 없이 조작을 운운하는 건 음모론에 불과한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명백한 물증마저 무시하는 심리가 생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음모론자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그들이 정확히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동북아역사재단의 이정빈 연구위원은 '지리적 신체(geo-body)'라는 개념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추측합니다.

우리는 암암리에 한국사를 고정불변의 인격처럼 간주하고 그 영토를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현대 한국사의 무대인 한반도에 특히 강하다. 이 점에서 한사군은 우리의 신체 중 일부가 타인에 의해 범해진 것과 같은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다. 최근의 비난은 이러한 정서에 편승한 것이 아닐까.
- 「한사군, 과연 롼허강 유역에 있었을까?」에서

다시 말해서 국민 국가는 신성한 영토이고,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믿음을 가진 탓에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었다고 우긴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음모론에 빠진 이들은 중국이 나중에 한반도 북부의 영유권을 주장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나타냅니다. 고대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철저하게 현대인의 관점에서 해석하다 보니 기우에 사로잡힌 셈입니다.

이처럼 사료를 왜곡하거나 곡해하는 방식을 일삼으면서 음모론을 꺼내는 이덕일 소장 등을 가리켜 역사학계 한쪽에서는 그들을 '사이비 역사학자'로 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이비 역사학자라는 용어에는 어엿한 역사학자인 척 행세하면서 대중을 가르치지만, 기실 역사학의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가짜일 뿐이라는 통렬한 비판이 담겼습니다. 아무리 언짢아도 겉으로는 점잖게 이야기하기 마련인 학자들이 비난에 가까운 사이비라는 표현을 썼다는 사실이 뜻밖으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엉터리 학설이 혹세무민한다는 위기감이 커졌다는 방증입니다.

안호상(安浩相), 문정창(文定昌)처럼 사이비 역사학자라고 부를 만한 자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1980년대에 '국사 교과서 파동'으로 홍역을 치른 역사학계는 대체로 사이비 역사학자들을 무시하는 전략으로 대응하였습니다. 공청회나 토론회에 나가서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반박해 봐야 큰 소용이 없음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지요(관련 글). 그러나 무대응 전략은 옳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사이비 역사학자들은 대중 강연과 저술로 시나브로 영역을 넓혔고, 어느새 역사학계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추진하던 동북아역사지도 편찬과 고대 한국 프로젝트(EKP : Early Korea Project) 지원 사업이 중단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사이비 역사학자들이 정치인들의 권력을 등에 업고 일으켰다는 점에서 국사 교과서 파동의 재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이덕일 소장이 임나일본부설 비판에 평생을 바친 김현구 교수를 거꾸로 임나일본부설을 신봉하는 식민주의 사학자로 모함하는 사건까지 일어났습니다(관련 기사).

사이비 역사학의 선봉장 격인 이덕일 소장(한겨레21)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역사학계가 받은 충격은 대단히 컸습니다. 애꿎은 사람에게 반민족이니 친일이니 하는 누명을 씌우는 사이비 역사학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였습니다. 특히 '1987년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운 소장 학자들은 2015년에 젊은역사학자모임을 결성하고서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거짓과 선동을 낱낱이 밝히는 행동에 나섰는데, 일례로 계간지 『역사비평』 2016년 봄·여름·겨울호에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사비평』에 게재된 9편의 논문을 한데 묶고, 거기에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천문 관측 기록이 신빙성이 있다는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의 주장을 논박하는 논문 한 편을 더하여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관련 정보)이라는 책을 2017년에 냈습니다. 이 책에서 백제사와 고대 한일 관계사를 공부한 위가야 박사는 사이비 역사학자들이 식민주의 역사학을 극복해야 한다고 만날 떠들면서도 정작 그들이 식민주의 역사학의 주요 이론인 반도적 성격론의 함정에 빠졌음을 지적합니다.

사이비역사학은 식민사학을 거부하고 또 그에 대해 누구보다 격렬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근간을 이루는 논리와 연구 방법은 결국 그들이 그토록 비판해 마지않는 식민사학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식민사학의 목소리로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식민사학의 슬픈 변종과 마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사학의 산물인가」에서

사이비 역사학자들이 수백 년 전에 귀결이 난 낙랑군의 위치 비정에 집착하는 사이에 고대사 연구자들은 낙랑군의 성격을 파악하는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일제 어용학자들은 낙랑군을 식민지로 규정하였으나, 고고학 자료로 분석한 낙랑군의 실제 성격은 그것과 딴판이었습니다. 낙랑군이 들어선 뒤에도 고조선의 토착민 사회 다수는 온존하였으며, 한(漢) 제국은 고조선 유민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군현을 오랫동안 운영하기 힘든 상황에 부딪혔습니다. 그로 인해 낙랑군 지배층은 다수의 고조선계 토착민과 소수의 중국인으로 이루어졌는데,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서로 융합한 이들은 '낙랑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관련 글). 낙랑인의 등장은 낙랑군이 근대 식민지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임나일본부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조차 왜(倭)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였다는 식의 남선경영론(한반도 남부 경영론)을 따르는 학자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현재 학계에서는 임나일본부를 가야의 대외 관계의 산물로 이해하며, 가야 지역에서 활약한 왜인들의 실체를 어떻게 보느냐에 관심을 두는 경향을 보입니다. 사이비 역사학자들이 이미 예전에 폐기된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의 임나일본부설을 들먹이는 건 연구사에 무지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시대착오적인 행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문제는 『환단고기』 같은 위서를 만들어서 퍼뜨리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기존 연구 성과를 망가뜨리고 참신한 연구 활동을 가로막으면서 무슨 애국 운동이라도 벌인 양 포장하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마치 독립운동가로 위장한 일제 부역자를 보는 듯해서 기가 찰 노릇이지요. '역사 의병대'를 자처하지만, 파시스트에 가까운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쓴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그나마 역사학계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사이비 역사학의 실태가 일부 드러나자 이덕일 소장의 저서와 기고문을 비중 있게 다루던 언론의 태도가 요즈음 들어서 사뭇 달라졌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몇몇 신문과 잡지에서 사이비 역사학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기사를 내보낸 것도 큰 변화입니다. 그렇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식민주의 역사학에 물든(?) 역사학계를 질타하며 사이비 역사학자들을 지지하는 글이 넘칩니다. 언제든지 또 다른 기회가 온다면, 사이비 역사학은 봄바람에 들불 번지듯 퍼질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의 머리글에서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학계의 성과를 대중화하는 데 소홀했던 것이 이번 사태를 심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라고 진단한 대로 사이비 역사학의 준동을 막는 가장 좋은 길은 역사 대중화입니다. 최근 교양서, 시민 강좌, 팟캐스트 방송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 주는 학자가 늘어나서 과거와 흐름이 바뀌었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역사 대중화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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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남중생 2018/04/10 14:39 # 답글

    오오 geo-body! 중국과 베트남 역사에서의 geo-body에 대한 글도 조만간 번역해봐야겠습니다.
  • 解明 2018/04/10 18:46 #

    중국을 언급하시니까 얼마 전에 본 드라마 <항왜영웅 척계광(抗倭英雄戚继光, 국내명은 '영웅 척계광')>이 떠오르는군요. 주인공 척계광의 후원자로 나오는 호종헌(胡宗憲)이 엄숭(嚴嵩) 일파로 몰려 관직을 잃고 감옥에 갇히자 척계광을 보호하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이 장면을 굉장히 비장미 넘치게 그렸습니다. 그러면서 호종헌의 『주해도편(籌海圖編)』에 조어도(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 열도)가 중국 영토로 그려졌다는 해설이 나오지요. 왜구 박살 내는 내용에 근현대사의 영토 분쟁 문제를 살짝 담아서 흥미로웠습니다.
  • 남중생 2018/04/11 09:49 #

    흥미롭네요. 유성룡이 독도에 대한 기록을 했더라면, 이순신 드라마에도 언급되겠지요ㅎㅎ
  • 解明 2018/04/11 12:54 #

    그런데 드라마는 그만큼 흥미롭지 않았답니다. 2015년에 방영된 드라마 수준이 십여 년 전에 만들어진 <불멸의 이순신>보다 뒤떨어지더군요. 그리고 왜구 대부분이 승병 복장을 한 까닭도 모르겠고요. ^-^;
  • 남중생 2018/04/11 21:27 #

    하하... 아마 데우스 여래를 섬기는 것이겠지요.ㅋㅋㅋㅋㅋㅋ
  • 단족 2018/07/12 22:24 # 삭제 답글

    요즘 중국사서도 번역되어 한글로 읽을 수 있는데, 거의 모든 중국사서, 특히 사고전서는 지금의
    요서지역을 낙랑군이라고 하는데, 이유는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시작되는 수성현이다
    라고 하는데, 이 세가지가 충조하는데가 어딘지 생각해 보면 알텐데, 해석이 다르나???
  • 解明 2018/07/12 22:52 #

    "예(濊)는 북쪽으로는 고구려(高句驪)·옥저(沃沮)와, 남쪽으로는 진한(辰韓)과 접해 있고, 동쪽은 대해(大海)에 닿으며, 서쪽은 낙랑(樂浪)에 이른다. 예 및 옥저·고구려는 본디 모두가 조선(朝鮮)의 지역이다."
    - 범엽(范曄)의 『후한서 (後漢書)』에서

    "한(韓)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倭)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천리 쯤 된다."
    -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에서

    네, 중국 사서에 이렇게 쓰였네요. 갈석산 운운하는 떡밥 쉰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다른 떡밥 갖고 오세요.
  • 단군족 2021/07/15 18:42 # 삭제 답글

    가만히 보면 여기는 일본 우익단체 대변인 같고, 떡밥이 쉬었다고 하면서 중국 담기양 지도를
    그대로 옮겨서 지도를 만드는 동북아 역사재단은 아마도 연구는 안하고 그냥 패거리 연구, 패거리 학문을
    하는 그 차체로 보이고, 도대체 이런 것이 아마도 이병도와 연결된 일본제국의 역사학 교수들 제자이기
    때문에 한발짜국도 이병도의 설을 뛰어넘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역사학 이론이 모두 같을 수 있는가
    그것 자체가 공산주의 하의 억압된 방식이겠지요. 그래 연구할게 없는지도 궁금하고, 어떻게 그나물의
    그밥일까? 중국의 25사에도 요서지역에 한사군이 있음을 기록하는데도 떡밥이라고 하니 ㅎㅎㅎ
    정신 좀 차리고 역사공부하고, 그러는 사이에 중국 동북공정으로 점령 당하고, 또 일제와같은 시절이
    ㅗㄹ까 두렵다.
  • 解明 2021/08/15 20:41 #

    한동안 블로그를 관리하지 않았더니 이런 댓글이 달렸네요.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 이병도를 주문처럼 외는 그 수준이 한심할 따름입니다. 진짜 그 나물에 그 밥이네요.
  • 황지언 2021/09/09 20:55 # 삭제 답글

    ㅎ여튼 이더길이 문ㅈ여 ....

    증ㅅ도 ㅅ이비 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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