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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발굴, 느리지만 한 걸음씩 역사

하늘에서 본 풍납토성(연합뉴스)

1,500년 전 백제 하남위례성은 이렇게 우리 앞에 현신했다. 보고서에는 없으나 빔 박는 소리를 들은 날 눈이 왔다고 한다. 이형구의 말을 추려 보면 이렇다. 1996년 봄 정신문화연구원에서 선문대로 자리를 옮긴 이형구는 학술조사단을 조직해 그 해 여름 방학 때부터 1997년 신정 연휴 즈음까지 풍납토성 일대에 대한 실측 조사를 벌였다. 고고학의 실측 조사란 쉽게 말해 측량이다. 지금 남아 있는 토성의 크기가 얼마만하며 원래 상태는 어떠했을 것이며 하는 따위에 대한 기초 측량이다. 그런데 이형구는 1학년 신입생들로 구성된 조사단을 신정 연휴에도 풍납토성 현장에다 소집해 작업을 시켰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토성 안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대형 빔을 박는 소리를 듣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현장으로 들어가 나뒹구는 백제 토기들을 확인한 그는 이런 사실을 문화재연구소에 즉각 통보했다는 것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했다. 하지만 잠시 아찔한 상상을 해 본다. 신정 연휴 그 때 만약 이형구가 현장에 없었더라면 풍납토성에 묻힌 백제 역사는 1,500년이란 기나긴 잠에서 잠시나마 깨었다가 굴삭기에 깨지고 망가져 영원히 사라졌을지 모른다. 조유전이 "풍납토성이 여기까지 온 것은 형구 때문이야"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면 이형구의 다급한 전화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대목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풍납토성 = 백제 왕성'임을 확인하는 고고학적 성과의 첫 출발이자 왜 풍납토성을 보존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 공감대를 형성하는 첫 진원지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이곳에 대한 발굴이 있었고, 백제 왕성터임이 유력한 증거들이 나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사실 그런 증거는 1964년 이 일대를 발굴했던 김원룡이 제시한 것이기도 하지만(뒤에서 자세히 살핀다) 어찌된 셈인지 30년 동안이나 묻혔다가 1997년에야 새삼스레 되살아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형구의 전화 한 통은 중요성을 갖는다.
- 김태식의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에서

올해는 풍납토성을 발굴한 지 2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풍납토성 발굴 20주년을 기리는 국제 학술 대회가 마침 오늘 열리기도 했는데, 이런 자리까지 마련할 만큼 풍납토성의 재발견은 고고학계와 역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대사건이었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쓴 김부식(金富軾, 1075~1151)조차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고 한 백제의 첫 도읍지 위례성의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997년 이형구 교수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한성 백제의 흔적을 찾아낸 뒤부터 이제까지 풍납토성에서는 여러 유적과 유물이 드러났습니다. 십 미터를 훌쩍 넘는 높다란 성벽,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여(呂) 자처럼 생긴 대형 건물 터, 제사를 지낸 듯한 우물, 대부(大夫)라는 글씨가 새겨진 토기, 왕이나 귀족이 탄 수레가 지나다녔을 포장도로, 성을 둘러싼 해자 등은 풍납토성이 예사롭지 않은 공간임을 뚜렷이 보여 줬습니다. 성안에 민가가 빽빽이 들어찬 탓에 20% 정도밖에 안 되는 일부 지역만 조사하였을 뿐인데도 한국 고대사를 새로 써야 할 만큼 대단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그 전만 하더라도 풍납토성을 백제의 '잃어버린 왕도' 위례성으로 여기는 사람은 적었으나, 이제는 반대로 풍납토성은 위례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편이 소수일 만큼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에서 서쪽 성벽이 있었으리라고 추정하는 구간 지하에서 성문 터가 나왔습니다(관련 기사). 발굴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레미콘 공장이 자리 잡아서 유구 같은 게 남았을까 싶었는데, 뜻밖에도 풍납토성에서 처음으로 성문 터를 확인하였으니 놀라운 일입니다. 숱한 개발로 몸살을 앓았음에도 풍납토성이 아직도 많은 역사의 비밀을 품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보입니다. 54년 전인 1964년에 성벽만이 아니라 성 전체를 사적으로 지정하였다면 참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나마 20년 동안 느리지만 꾸준히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덧글

  • 네비아찌 2017/11/10 10:06 # 답글

    문제는 저곳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현재 거주민들의 재산권이 심각한 침해를 받고 있다는 거지요. 풍납토성도 중요하지만 거주민들의 재산권도 합당한 보상을 받고 이주를 시킨 후에 발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고 생각합니다.
  • 解明 2017/11/10 12:08 #

    이제까지 보상금으로 적잖은 예산이 들어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아무래도 주민들이 기대하는 만큼 많은 돈을 받기 쉽지 않겠지요. 현재 속도대로라면, 보상과 복원 작업을 금세기 안에 마치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니까요. 참 풀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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