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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코뉴에서 고양이가 수탉을 죽였다?!! 언어

네? 누가 누구를 죽여요?(오마이뉴스)

"프랑스의 가스꼬뉴(Gascogne) 지방에서는, 수탉을 faison(꿩), vicaire(보좌 신부)라 부르고 라틴말의 gallus(현대 프랑스말의 coq)에서 온 말을 쓰지 않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해명된다. 이 지방말에서는 라틴말의 ll은 t로 변했으므로 gallus는 *gat가 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 남쪽 지방에서는 고양이를 gat(<속라틴말의 cattus)라 부르고 있다. 시골에서는 닭과 고양이는 한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었으므로 두 동물을 다 같은 말로 부르게 되면 매우 불편하게 된다. 그래서 수탉을 전혀 다른 말 azɑ̃(< faisan), bigey(< vicaire)로 부르게 되었다.

(중략) 수탉의 *gat와 고양이의 gat는 공존하면서 낱말의 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말이다. 곧 공시태를 구성하고 있는 말이다. 이러한 두 말 사이의 관계가 수탉의 *gat를 쓰지 못하게 하고 그 대신 전혀 다른 계통의 말로 갈음하도록 한 원인이 된 것이다. *gat 대신에 bigey를 쓰게 된 것은 통시태인데 이 통시적 현상은 공시태의 도움으로 설명되는 예로 들 수 있다."
- 허웅의 『언어학 - 그 대상과 방법』에서

속라틴어의 'gallus(수탉)'와 'cattus(고양이)'라는 단어가 프랑스 남서부의 가스코뉴 지방에서 음운 변화 규칙으로 형태가 바뀝니다. '-ll-'과 'c-'는 각각 '-t-'와 'g-'로 바뀌고, '-us'는 영형태(∅)가 됩니다. 이렇게 형태가 달랐던 두 단어가 똑같이 'gat'가 되면서 동음 충돌 현상이 일어나자 불편해서 참기 어려웠던 가스코뉴 사람들은 수탉을 'bigey'로 대치해 버렸습니다. 가스코뉴 사람들이 수탉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고양이 대신에 수탉이 희생(?)된 것이지요. 언어 지리학에서는 이 사건을 가리켜 "가스코뉴에서 고양이가 수탉을 죽였다"라고 표현하는데, 동음 충돌로 한 단어가 사라진 대표 사례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말에도 이것과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중세 국어에서 '좋다[好]'의 형태는 '둏다'로 지금과 형태가 좀 달랐는데(흔히 '됴타'로 적혔지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좋다'는 깨끗하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 무렵 동남 방언에서 시작한 /ㄷ/ 구개음화 현상이 17세기 말에 중앙으로까지 북상하면서, 그 영향을 받은 '둏다'가 '죻다(죠타)'를 거쳐 '좋다(조타)'로 소리 나게 됩니다. '좋다'가 갑자기 동음이의어가 된 셈입니다. 사람들은 예나 이제나 옛것보다 새것을 더 좋아하기 마련일까요? 옛 형태인 '좋다(깨끗하다)'는 사라지고, 새 형태인 '좋다'가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물론 지금의 '깨끗하다'에 해당하는 단어가 따로 있었던 것도 이러한 선택을 부추겼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덧글

  • 남중생 2017/07/15 23:21 # 답글

    '산 좋고, 물 좋다'는 표현은 '좋다'의 옛 의미를 유지하고 있는건가 보군요!
  • 解明 2017/07/16 15:23 #

    제가 견문이 적은 탓에 "산 좋고 물 좋다" 같은 표현이 근대 국어 시기 이전에도 존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찾아보니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데 없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 속담이 정확히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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