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明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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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와 '묻다' 언어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의 한 장면에서(다음 영화)

'듣다'라는 낱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듣'자 아래위의 자음 'ㄷ'이 꼭 귀처럼 보인다. 두 개의 귀를 한쪽 방향으로 열어 둔 모습이랄까. 아니 어쩌면 말하는 사람을 향해 몸의 귀도 열고 마음의 귀도 열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가운데 모음 'ㅡ'는 차분한 마음을 가리키는 듯도 하고 냉정한 판단을 말하는 듯도 하다. 두 개의 ㄷ을 연결하지 않은 것은 사심을 갖지 말라는 의미 같기도 하고. 보면 볼수록 그럴듯한 낱말이다.

반면 '묻다'는 입 모양의 'ㅁ'과 귀 모양의 'ㄷ' 사이에 'ㅜ'가 끼여 있다. 입을 열어 알고 싶은 걸 묻고 나서는 귀로 들으라는 뜻 같기도 하고, 알고 싶은 걸 물을 땐 동시에 제가 하는 말을 듣기도 하라는 의미 같기도 하다. 말하자면 내가 이런 걸 안다고 으스대려고 묻지 말고 정말 알고 싶은 걸 물으라는 뜻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묻는 일은 단지 묻고 듣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묻고 듣는 일로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는 뜻 같기도 하다. 이 또한 보면 볼수록 그럴듯한 낱말이다.
- 김정선의 『동사의 맛 -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에서

한글은 상형 문자가 아니므로 '듣다'와 '묻다'의 글씨 형태에서 어떤 깊은 뜻을 캐내는 일은 견강부회일지 모릅니다. 물론 글쓴이가 그걸 몰라서 'ㄷ'에서 귀를, 'ㅁ'에서 입을 떠올리지 않았을 테니 너그러이 넘어가야겠지만 말이지요. 잘 묻고 잘 듣는 게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이는 드뭅니다. 질문과 경청의 미덕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글쓴이의 이야기를 그 나름대로 새겨들을 만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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