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에 역사 교과서를 놓고 벌어졌던 역사전쟁의 전선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전선이, 새로 만들 역사 교과서에 들어갈 말을 그냥 민주주의로 하느냐, 아니면 민주주의 앞에 '자유'를 덧붙인 자유민주주의로 하느냐를 놓고 진보와 보수가 갑론을박을 벌이면서 다시 격전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사실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런 문제로 진보와 보수가 서로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이고 팔을 휘두르는 풍경은 바깥에서 바라보면 어딘지 희극처럼 보입니다. 사대부들이 상복을 몇 달 입을 것인지를 두고 입씨름을 벌였던 예송 논쟁이 문득 머릿속에 문득 떠오릅니다.
하지만 예송논쟁의 이면에 임금의 정통성 문제가 숨어 있었던 것처럼 자유민주주의 논쟁도 그저 그런 학술 논쟁이 아닙니다. 한윤형 씨의 『뉴라이트 사용 후기』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은 이 논쟁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뉴라이트 논쟁은 역사전쟁이면서 정치논쟁이다. 단순하게는 8·15를 '광복절'로 부를 것인가, '건국절'로 부를 것인가하는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궁극적으로는 일제 식민지기와 대한민국 건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관점을 둘러싼 역사전쟁의 차원이 있다. 하지만 그 전쟁의 이면엔 현존하는 정치세력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와 대한민국의 향후 과제는 무엇인지를 둘러싼 정치논쟁의 차원도 겹쳐 있다."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이 논쟁에 뛰어들어 뜨거운 말을 주고받는 것만 봐도, 자유민주주의 논쟁은 역사전쟁이면서 정치 논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실타래처럼 헝클어진 문제를 풀 수 없겠지요.
자유민주주의 논쟁은 역사전쟁이면서 정치 논쟁
사실 저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민주주의에서 아주 동떨어진 게 아니라면, 그것을 인정하는 데 인색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저는 왜 뉴라이트가 권력의 힘을 빌려 그네들의 생각을 관철하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 참여정부에서 과거사를 '정리'하고 '청산'한다고 했을 때 크게 반발했던 이들은 뉴라이트였습니다. 뉴라이트를 대표하는 학자인 이영훈 교수와 박지향 교수는 『대한민국 이야기』와 『윤치호의 협력일기』에서 각각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요사이 한국의 정치가 과도하게 역사화하고 있음을 우려합니다.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이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무려 16건이나 되는 과거사청산 특별법이 제정되어 16개의 위원회가 활동 중입니다. 그 중에는 110년도 더 된 조선왕조 시대의 사건에 관한 특별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밖으로는 야스쿠니,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외교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역사전쟁'이 진행 중입니다."
"'친일(親日)'은 우리 사회에서 마치 오물처럼 누구나 피해 가고 싶어하는 것, 혹은 미운 사람을 망가뜨리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 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이 친일협력자를 가운데 두고 둘러서서 돌을 던지고 자신은 그 죄악과 무관한 사람임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심지어 친일의 극렬한 심판자가 되어 대중의 공감을 얻고 거기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까지 있다. 특히 정치권이 개입할 때 친일 문제는 여지없이 그들의 정략적 야욕에 놀아나는 장난감이 된다. 지난 정부의 과도한 역사 바로잡기 의식에서 '잘못' 태어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을 언론에서 접하면서, 이제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성숙한 태도로 과거를 정리할 때가 되었음을 절감하였다. '잘못' 태어났다고 할 때 그것은 친일 청산을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하되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친일 청산은 관이 나서서, 혹은 정부가 임명한 몇 사람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몇 년 만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과업은 훨씬 더 많은 연구가 진척되고 훨씬 더 많은 역사적 사실이 규명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했던 뉴라이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관의 힘에 기대어 금성출판사의 교과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용을 뜯어고치고 교육과정을 바꿨습니다(전 정부에서 새로 만든 교육과정이 학교에서 시행조차 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저는 이영훈 교수와 박지향 교수의 지적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여기지만,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그네들의 말이 모순처럼 들립니다. 혹시 뉴라이트는 우리에게 불리하면 관이 나서는 것은 나쁘지만, 우리에게 유리하면 관이 나서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식의 이중 잣대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요?

<한국일보>가 2011년 9월 21일 사설에서 "'자유'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정작 자유롭고 정당한 절차와 태도를 무시하는 독선을 부려서도 안 된다."라고 말하면서 뉴라이트의 '비민주적'인 행태를 꼬집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입니다. 뉴라이트의 일방통행은 그네들을 '친일매국수구꼴통'쯤으로 보는 대중의 인식(저는 이런 인식이 어느 정도 오해라고 봅니다만)을 더욱 안 좋게 만들 뿐입니다.
풍차로 돌진하는 뉴라이트
더 큰 문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 집착한 나머지 뉴라이트는 그네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이들을 인민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빨갱이'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 하십시오."라고 말한 한나라당 박영선 의원은 뉴라이트의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잘 보여줍니다(관련 기사). 박 의원을 비롯한 뉴라이트가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북한의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민주주의'가 들어가기 때문인 듯합니다. "남한이 북한의 민주주의 호칭을 따라감으로써 두 체제가 동일시돼 북한도 남한 수준의 민주체제라고 착각하게 한다."라고 한 정용석 교수의 글이 그것을 방증합니다(관련 글).
그러나 정용석 교수가 우려하는 것처럼 북한이 민주주의를 표방한다고 해서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그것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가르치면 될 일을 굳이 사상 검증까지 하면서 용어를 바꿔야만 했을까요? 일반인들은 대개 북한 국호에 민주주의가 들어갔다고 하면 북한도 좋은 건 알아서 민주주의를 갖다 붙인다며 비웃습니다. 다시 말해 일반인들은 북한처럼 민주주의와는 백만 광년쯤 떨어진 집단조차 민주주의를 표방할 만큼 민주주의를 '좋은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아마도 뉴라이트는 이런 일반인들의 순진함(?)과 어리석음(?)을 탓할지 모르겠으나, 일반인들의 눈에 뉴라이트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일 뿐입니다. 아무리 봐도 민주주의는 거인이 아니라 풍차일 뿐인데 말이지요.
또 정용석 교수는 민주주의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변질'되었다고 한탄하면서 자유민주주의가 '변질'되지 않은 진정한 민주주의임을 역설합니다. 이명희 교수가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심화된 높은 단계의 특성"이라는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한 것도 정용석 교수처럼 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로 '변질'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관련 글). 저는 정용석 교수와 이명희 교수가 자유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을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다이아몬드 교수가 자유민주주의의 내용으로 제시한 "권력에 대한 강한 통제, 강력한 법치주의, 정부의 높은 투명성, 개인 권리의 폭넓고 두터운 보호 등"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할 뿐이지요.
이명희 교수는 '세계적 권위자'로부터 자유민주주의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만족했는지(게다가 그 세계적 권위자가 좌파는 뭔가 잘못 알고 있다며 비판까지 하니 금상첨화지요) "우파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로부터 어떻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보존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심각히 생각해야 한다. 반면 좌파는 일자리를 만들고 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적극 개입하기를 바란다면, '지속가능한 사회정의'를 이룰 방법과 비용 충당 방안에 대해 답해야 한다."라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문제 제기는 그리 "심각히 생각"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관련 기사). 그저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소리만 하고, 현재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내용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였는지는 따져보지 않으니 그의 외침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게 들립니다.
뉴라이트는 공산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변질'했다고 분개하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공산주의자들만 민주주의를 '변질'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웠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는 아무리 잘 봐줘도 다이아몬드 교수가 말한 자유민주주의와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자유를 짓눌렀던 자유민주주의의 역설
게다가 뉴라이트가 자유민주주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드는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유신 헌법에서 처음 나왔다는 사실은 뉴라이트로서는 감추고 싶은 ‘불편한 진실’입니다. 『역사비평』(제96호, 2011년 가을)에 실린 「박정희 시대의 헌법 정신과 내용의 해석」이라는 논문에서 박명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삽입된 것은 민주주의를 억압하기 위한 유신헌법의 제정 시점이 최초였다. 그런데 훗날 1987년 6월항쟁헌법을 제정할 때는 이 부분이 제4조의 통일 조항에까지 확대된다. 이 조항의 삽입이 독재의 항구적 제도화를 추구한 유신체제의 등장 시점이라는 사실은 최소한의 민주적 정당성을 박탈한다. 특히 전문의 같은 부분은 1948년 건국헌법 때부터 1969년 3선헌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제諸 제도"였다. 이념 대결이 극심했던 1948년 건국헌법 제정 당시에조차 유신헌법 및 현행 헌법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민주주의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건국헌법을 설계했던 한 사람인 유진오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보다 훨씬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실제의 건국헌법에 내용에 상부한다.
더욱더 중요한 점은 이 부분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냉전시대 반공주의로 이해했던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와 동일한 의미의 '자유민주적(liberal-democratic)'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한국의 국가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추구해오던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자유로운 민주적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gordnung)"라는 독일헌법(본기본법, 1949)의 '방어적 민주주의', '전투적 민주주의'에 대한 오역과 왜곡을 통한 적용이었다."
그나마 오역과 왜곡에만 그쳤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원칙이 헌법에 삽입되는 것과 동시에 '자유민주주의'를 외친 수많은 학생과 재야 민주인사들, 언론인들, 노동자들은 가공할 만한 탄압을 받았다.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추구한 체제에 의해 극렬하게 억압받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자유민주주의 세력들조차 강력하게 탄압받았던 현실을 보면서 비로소 우리는 유신헌법이 규정해놓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는 물론 최소한의 자유민주주의조차 현저히 결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뉴라이트는 자신들이 민주주의가 '변질'되었다고 걱정하는 것 못지않게 진보 진영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변질'되었다고 우려하는 것을 이해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아닌 게 아니라 뉴라이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내용을 살펴보면, 진보 진영이 근심하는 게 한낱 기우일 뿐이라고만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에 철저했다?
교과서포럼에서 지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가리켜 "자유민주주의에 철저했던 만큼,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이 설명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책에서는 삼일 운동을 "천부인권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한국인의 정치의식에 널리 수용되는 중대 계기가 되었다"라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따른다면 뉴라이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에는 천부인권이 최소 요건으로 들어간 듯합니다. 그러나 국민 방위군 사건이나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을 보면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인권 의식이라는 게 있기는 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그때 외국 기자들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쓰레기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격"이라고 혹평했었지요). 그런 이승만 전 대통령을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자였다고 한다면 거짓이거나 과장이겠지요.
이쯤 되면 뉴라이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뉴라이트는 대한민국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면 무엇이냐며 상대를 윽박지르는데, 그보다 먼저 자신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밝혀야 하지 않을까요? 일제 강점기를 협력과 저항의 이분법으로만 볼 수 없다고 말하는 뉴라이트가 왜 자유민주주의 아니면 인민민주주의라는 이분법을 사람들에게 강요할까요? 뉴라이트는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앞에서 말한 뉴라이트의 이중 잣대는 여기에서도 드러납니다.
여기서 제헌 국회에서 있었던 일화 하나를 살펴볼 만합니다. 제헌 국회에서 만든 헌법 초안에는 '인민'이라는 말이 일괄적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인 윤치영은 '인민'이 공산당의 용어라고 해서 딴죽을 걸었습니다. '인민'은 옛날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쓰였던 말이었음에도 윤치영의 끈질긴 색깔 공세는 성공해서, 결국 '인민'은 빠지고 그 자리에 '국민'이라는 말이 들어갔습니다. 헌법 제정에 참여했던 유진오는 그 일을 두고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뜻으로 국가우월주의의 냄새가 풍기는 반면, '인민'은 '국가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를 의미한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좋은 단어 하나를 빼앗겼다."라고 탄식했었는데, 저는 이 말을 오늘날에도 곱씹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진오라면,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와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뉴라이트에게는 공산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라는 좋은 단어 하나를 빼앗기면 안 된다고 말했겠지요. 반대로 민주주의로 충분하다며 안일하게 넘어가려는 사람들에게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자유라는 좋은 단어 하나를 빼앗기면 안 된다고 충고했을 것입니다. 보통 진보 진영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이 자주 입에 담는 자유나 경쟁이라는 말을 꺼리는 일이 많은데, 그 말을 버리기보다는 그 말의 참뜻을 되찾아 '복권'하는 것이 진보주의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앞에서 제가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와 큰 차이가 없다면 인정하는 데 인색함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진보와 보수가 공유하는 환상을 깨부수자
그리고 교과서를 둘러싼 역사전쟁을 끝내려면 진보 진영은 교과서 제도를 자유발행으로 바꾸자고 요구해야 합니다.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바뀌었다지만, 국정이나 검인정이나 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국가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틀을 제한하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해석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싸움이 학계에서 일어나고, 그 싸움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면서 소모적인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 흐름을 바꾸려면 교과서 제도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겠지요.
사실 이념으로만 따지면 교과서 자유발행제는 진보보다는 보수가 앞장서 해야 할 정책입니다. 뉴라이트는 과거 자신들이 만든 대안교과서를 시장에 내놓아 평가받았던 것처럼, 다른 교과서들도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가치를 인정받도록 주장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뉴라이트는 보수의 정도(正道)를 버리고 관의 힘을 빌려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혔습니다. 이래서야 뉴라이트가 어디 시장 자유를 중시하는 보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보수의 탈을 쓴 사이비일 뿐이지요.

저는 금성출판사의 '좌편향' 교과서든 교과서포럼의 '우편향' 교과서든 둘 다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두 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교과서도 학교에서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느냐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이쪽저쪽의 말을 다 들어보면서 역사를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힘을 기르도록 해야 합니다. 교과서를 독점함으로써 학생들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의식화'하겠다는 환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와 보수는 모두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다만, 저는 보수의 정도를 저버린 뉴라이트보다는 진보 진영이 앞으로 감당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많다고 봅니다.
이제까지 쓴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저는 역설적으로 자유민주주의 논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옛날보다 성숙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민주주의란 어떠해야 하는지. 좀처럼 쉽게 답변할 수 없는 물음들을 이 논쟁은 함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한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수준과 같이 간다. 민주주의가 한 사회에 뿌리내리고 질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교육은 그래서 중요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때 민주주의를 이해하고자 하는 지적 욕구도 커지고, 민주주의를 더 이해하게 됨에 따라 사회적 실천도 늘어나 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어떤 현실에 기초를 두고 또 어떤 이론의 안내를 받으면서 사태를 전망하는가를 반추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를 통해 시민적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관한 비판적 논의와 논쟁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좋은 논의와 논쟁은 사태를 명료하게 만들고 문제를 선명하게 부각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해 보다 넓고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참여와 실천을 자극하는 민주주의의 기관차이다. 그리고 이는 사회가 지식인에게 기대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저는 최장집 교수의 말대로 자유민주주의 논쟁이 소모적인 싸움을 멈추고 좋은 논의와 논쟁으로 발전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 대해 '보다 넓고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참여와 실천을 자극하는 '민주주의의 기관차'가 되기를 바랍니다.
첨언 하나. 한편, <조선일보>는 지난해에 발표된 최장집 교수의 논문 내용을 기사화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관련 기사).
"최 교수는 "민주주의의 실제 내용과 성격, 방향은 민주주의만으로 규정될 수 없다"면서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여러 결핍 조건을 깊이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 자유주의가 매우 강력한 유의미성이 있다"고 했다. 또 "자유주의 원리의 실천 여부와는 무관하게 한국은 처음부터 민주주의였고 자유주의였다"며 "진보든 보수든 자유주의적 과제를 해결해가는 데 유능함을 발휘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매우 보편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최근 학계 안팎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 교과서 기술 지침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것을 두고 논쟁이 뜨거웠다. 주로 보수가 찬성 편에, 진보가 반대로 양분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진보 진영의 '간판'으로 꼽히는 최 교수가 진보 진영의 자유주의관을 비판하고 나섬에 따라 논의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반면에, <프레시안>은 "그러나 최 교수의 주장은 자유주의에 대한 진보의 '백기투항'이라기보다는, 자유주의의 '진보적 해석'에 대한 제언에 가깝다. 진보가 자유주의를 '부르주아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폄하하며 거리를 둘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내건 자유주의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분석하여 <조선일보>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쳤습니다(관련 기사).
결국, 최장집 교수가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일보>가 자신의 논문을 잘못 읽었다며 잘라 말함으로써 어느 쪽이 헛다리를 짚었는지 드러났습니다(관련 기사). 십여 년 전에도 최 교수의 논문을 '오독'했던 <조선일보>의 독해력은 아직도 제자리를 맴도나 봅니다.
첨언 둘. 처음 이 글을 쓸 때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정통성 문제 등도 다루고 싶었는데, 너무 길어져서 뺐습니다. 일부 진보적인 언론에서는 뉴라이트가 임정의 법통을 부정하는 듯이 말했지만(관련 기사), 저는 뉴라이트가 임정의 법통을 부정한다고 안 봅니다. 그에 대해서는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첨언 셋. 본문에서 언급한 교과서 자유발행제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면 이기정 씨의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예송논쟁의 이면에 임금의 정통성 문제가 숨어 있었던 것처럼 자유민주주의 논쟁도 그저 그런 학술 논쟁이 아닙니다. 한윤형 씨의 『뉴라이트 사용 후기』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은 이 논쟁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뉴라이트 논쟁은 역사전쟁이면서 정치논쟁이다. 단순하게는 8·15를 '광복절'로 부를 것인가, '건국절'로 부를 것인가하는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궁극적으로는 일제 식민지기와 대한민국 건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관점을 둘러싼 역사전쟁의 차원이 있다. 하지만 그 전쟁의 이면엔 현존하는 정치세력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와 대한민국의 향후 과제는 무엇인지를 둘러싼 정치논쟁의 차원도 겹쳐 있다."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이 논쟁에 뛰어들어 뜨거운 말을 주고받는 것만 봐도, 자유민주주의 논쟁은 역사전쟁이면서 정치 논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실타래처럼 헝클어진 문제를 풀 수 없겠지요.
자유민주주의 논쟁은 역사전쟁이면서 정치 논쟁
사실 저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민주주의에서 아주 동떨어진 게 아니라면, 그것을 인정하는 데 인색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저는 왜 뉴라이트가 권력의 힘을 빌려 그네들의 생각을 관철하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 참여정부에서 과거사를 '정리'하고 '청산'한다고 했을 때 크게 반발했던 이들은 뉴라이트였습니다. 뉴라이트를 대표하는 학자인 이영훈 교수와 박지향 교수는 『대한민국 이야기』와 『윤치호의 협력일기』에서 각각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요사이 한국의 정치가 과도하게 역사화하고 있음을 우려합니다.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이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무려 16건이나 되는 과거사청산 특별법이 제정되어 16개의 위원회가 활동 중입니다. 그 중에는 110년도 더 된 조선왕조 시대의 사건에 관한 특별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밖으로는 야스쿠니,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외교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역사전쟁'이 진행 중입니다."
"'친일(親日)'은 우리 사회에서 마치 오물처럼 누구나 피해 가고 싶어하는 것, 혹은 미운 사람을 망가뜨리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 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이 친일협력자를 가운데 두고 둘러서서 돌을 던지고 자신은 그 죄악과 무관한 사람임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심지어 친일의 극렬한 심판자가 되어 대중의 공감을 얻고 거기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까지 있다. 특히 정치권이 개입할 때 친일 문제는 여지없이 그들의 정략적 야욕에 놀아나는 장난감이 된다. 지난 정부의 과도한 역사 바로잡기 의식에서 '잘못' 태어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을 언론에서 접하면서, 이제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성숙한 태도로 과거를 정리할 때가 되었음을 절감하였다. '잘못' 태어났다고 할 때 그것은 친일 청산을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하되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친일 청산은 관이 나서서, 혹은 정부가 임명한 몇 사람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몇 년 만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과업은 훨씬 더 많은 연구가 진척되고 훨씬 더 많은 역사적 사실이 규명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했던 뉴라이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관의 힘에 기대어 금성출판사의 교과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용을 뜯어고치고 교육과정을 바꿨습니다(전 정부에서 새로 만든 교육과정이 학교에서 시행조차 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저는 이영훈 교수와 박지향 교수의 지적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여기지만,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그네들의 말이 모순처럼 들립니다. 혹시 뉴라이트는 우리에게 불리하면 관이 나서는 것은 나쁘지만, 우리에게 유리하면 관이 나서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식의 이중 잣대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요?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역사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출처 조선일보
<한국일보>가 2011년 9월 21일 사설에서 "'자유'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정작 자유롭고 정당한 절차와 태도를 무시하는 독선을 부려서도 안 된다."라고 말하면서 뉴라이트의 '비민주적'인 행태를 꼬집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입니다. 뉴라이트의 일방통행은 그네들을 '친일매국수구꼴통'쯤으로 보는 대중의 인식(저는 이런 인식이 어느 정도 오해라고 봅니다만)을 더욱 안 좋게 만들 뿐입니다.
풍차로 돌진하는 뉴라이트
더 큰 문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 집착한 나머지 뉴라이트는 그네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이들을 인민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빨갱이'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 하십시오."라고 말한 한나라당 박영선 의원은 뉴라이트의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잘 보여줍니다(관련 기사). 박 의원을 비롯한 뉴라이트가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북한의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민주주의'가 들어가기 때문인 듯합니다. "남한이 북한의 민주주의 호칭을 따라감으로써 두 체제가 동일시돼 북한도 남한 수준의 민주체제라고 착각하게 한다."라고 한 정용석 교수의 글이 그것을 방증합니다(관련 글).
그러나 정용석 교수가 우려하는 것처럼 북한이 민주주의를 표방한다고 해서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그것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가르치면 될 일을 굳이 사상 검증까지 하면서 용어를 바꿔야만 했을까요? 일반인들은 대개 북한 국호에 민주주의가 들어갔다고 하면 북한도 좋은 건 알아서 민주주의를 갖다 붙인다며 비웃습니다. 다시 말해 일반인들은 북한처럼 민주주의와는 백만 광년쯤 떨어진 집단조차 민주주의를 표방할 만큼 민주주의를 '좋은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아마도 뉴라이트는 이런 일반인들의 순진함(?)과 어리석음(?)을 탓할지 모르겠으나, 일반인들의 눈에 뉴라이트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일 뿐입니다. 아무리 봐도 민주주의는 거인이 아니라 풍차일 뿐인데 말이지요.
또 정용석 교수는 민주주의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변질'되었다고 한탄하면서 자유민주주의가 '변질'되지 않은 진정한 민주주의임을 역설합니다. 이명희 교수가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심화된 높은 단계의 특성"이라는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한 것도 정용석 교수처럼 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로 '변질'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관련 글). 저는 정용석 교수와 이명희 교수가 자유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을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다이아몬드 교수가 자유민주주의의 내용으로 제시한 "권력에 대한 강한 통제, 강력한 법치주의, 정부의 높은 투명성, 개인 권리의 폭넓고 두터운 보호 등"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할 뿐이지요.
이명희 교수는 '세계적 권위자'로부터 자유민주주의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만족했는지(게다가 그 세계적 권위자가 좌파는 뭔가 잘못 알고 있다며 비판까지 하니 금상첨화지요) "우파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로부터 어떻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보존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심각히 생각해야 한다. 반면 좌파는 일자리를 만들고 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적극 개입하기를 바란다면, '지속가능한 사회정의'를 이룰 방법과 비용 충당 방안에 대해 답해야 한다."라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문제 제기는 그리 "심각히 생각"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관련 기사). 그저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소리만 하고, 현재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내용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였는지는 따져보지 않으니 그의 외침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게 들립니다.
뉴라이트는 공산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변질'했다고 분개하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공산주의자들만 민주주의를 '변질'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웠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는 아무리 잘 봐줘도 다이아몬드 교수가 말한 자유민주주의와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자유를 짓눌렀던 자유민주주의의 역설
게다가 뉴라이트가 자유민주주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드는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유신 헌법에서 처음 나왔다는 사실은 뉴라이트로서는 감추고 싶은 ‘불편한 진실’입니다. 『역사비평』(제96호, 2011년 가을)에 실린 「박정희 시대의 헌법 정신과 내용의 해석」이라는 논문에서 박명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삽입된 것은 민주주의를 억압하기 위한 유신헌법의 제정 시점이 최초였다. 그런데 훗날 1987년 6월항쟁헌법을 제정할 때는 이 부분이 제4조의 통일 조항에까지 확대된다. 이 조항의 삽입이 독재의 항구적 제도화를 추구한 유신체제의 등장 시점이라는 사실은 최소한의 민주적 정당성을 박탈한다. 특히 전문의 같은 부분은 1948년 건국헌법 때부터 1969년 3선헌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제諸 제도"였다. 이념 대결이 극심했던 1948년 건국헌법 제정 당시에조차 유신헌법 및 현행 헌법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민주주의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건국헌법을 설계했던 한 사람인 유진오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보다 훨씬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실제의 건국헌법에 내용에 상부한다.
더욱더 중요한 점은 이 부분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냉전시대 반공주의로 이해했던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와 동일한 의미의 '자유민주적(liberal-democratic)'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한국의 국가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추구해오던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자유로운 민주적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gordnung)"라는 독일헌법(본기본법, 1949)의 '방어적 민주주의', '전투적 민주주의'에 대한 오역과 왜곡을 통한 적용이었다."
그나마 오역과 왜곡에만 그쳤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원칙이 헌법에 삽입되는 것과 동시에 '자유민주주의'를 외친 수많은 학생과 재야 민주인사들, 언론인들, 노동자들은 가공할 만한 탄압을 받았다.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추구한 체제에 의해 극렬하게 억압받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자유민주주의 세력들조차 강력하게 탄압받았던 현실을 보면서 비로소 우리는 유신헌법이 규정해놓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는 물론 최소한의 자유민주주의조차 현저히 결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뉴라이트는 자신들이 민주주의가 '변질'되었다고 걱정하는 것 못지않게 진보 진영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변질'되었다고 우려하는 것을 이해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아닌 게 아니라 뉴라이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내용을 살펴보면, 진보 진영이 근심하는 게 한낱 기우일 뿐이라고만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에 철저했다?
교과서포럼에서 지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가리켜 "자유민주주의에 철저했던 만큼,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이 설명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책에서는 삼일 운동을 "천부인권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한국인의 정치의식에 널리 수용되는 중대 계기가 되었다"라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따른다면 뉴라이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에는 천부인권이 최소 요건으로 들어간 듯합니다. 그러나 국민 방위군 사건이나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을 보면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인권 의식이라는 게 있기는 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그때 외국 기자들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쓰레기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격"이라고 혹평했었지요). 그런 이승만 전 대통령을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자였다고 한다면 거짓이거나 과장이겠지요.
이쯤 되면 뉴라이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뉴라이트는 대한민국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면 무엇이냐며 상대를 윽박지르는데, 그보다 먼저 자신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밝혀야 하지 않을까요? 일제 강점기를 협력과 저항의 이분법으로만 볼 수 없다고 말하는 뉴라이트가 왜 자유민주주의 아니면 인민민주주의라는 이분법을 사람들에게 강요할까요? 뉴라이트는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앞에서 말한 뉴라이트의 이중 잣대는 여기에서도 드러납니다.
여기서 제헌 국회에서 있었던 일화 하나를 살펴볼 만합니다. 제헌 국회에서 만든 헌법 초안에는 '인민'이라는 말이 일괄적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인 윤치영은 '인민'이 공산당의 용어라고 해서 딴죽을 걸었습니다. '인민'은 옛날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쓰였던 말이었음에도 윤치영의 끈질긴 색깔 공세는 성공해서, 결국 '인민'은 빠지고 그 자리에 '국민'이라는 말이 들어갔습니다. 헌법 제정에 참여했던 유진오는 그 일을 두고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뜻으로 국가우월주의의 냄새가 풍기는 반면, '인민'은 '국가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를 의미한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좋은 단어 하나를 빼앗겼다."라고 탄식했었는데, 저는 이 말을 오늘날에도 곱씹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진오라면,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와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뉴라이트에게는 공산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라는 좋은 단어 하나를 빼앗기면 안 된다고 말했겠지요. 반대로 민주주의로 충분하다며 안일하게 넘어가려는 사람들에게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자유라는 좋은 단어 하나를 빼앗기면 안 된다고 충고했을 것입니다. 보통 진보 진영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이 자주 입에 담는 자유나 경쟁이라는 말을 꺼리는 일이 많은데, 그 말을 버리기보다는 그 말의 참뜻을 되찾아 '복권'하는 것이 진보주의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앞에서 제가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와 큰 차이가 없다면 인정하는 데 인색함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진보와 보수가 공유하는 환상을 깨부수자
그리고 교과서를 둘러싼 역사전쟁을 끝내려면 진보 진영은 교과서 제도를 자유발행으로 바꾸자고 요구해야 합니다.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바뀌었다지만, 국정이나 검인정이나 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국가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틀을 제한하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해석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싸움이 학계에서 일어나고, 그 싸움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면서 소모적인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 흐름을 바꾸려면 교과서 제도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겠지요.
사실 이념으로만 따지면 교과서 자유발행제는 진보보다는 보수가 앞장서 해야 할 정책입니다. 뉴라이트는 과거 자신들이 만든 대안교과서를 시장에 내놓아 평가받았던 것처럼, 다른 교과서들도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가치를 인정받도록 주장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뉴라이트는 보수의 정도(正道)를 버리고 관의 힘을 빌려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혔습니다. 이래서야 뉴라이트가 어디 시장 자유를 중시하는 보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보수의 탈을 쓴 사이비일 뿐이지요.

보수와 진보가 보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다를까?, 출처 한국일보
저는 금성출판사의 '좌편향' 교과서든 교과서포럼의 '우편향' 교과서든 둘 다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두 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교과서도 학교에서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느냐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이쪽저쪽의 말을 다 들어보면서 역사를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힘을 기르도록 해야 합니다. 교과서를 독점함으로써 학생들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의식화'하겠다는 환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와 보수는 모두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다만, 저는 보수의 정도를 저버린 뉴라이트보다는 진보 진영이 앞으로 감당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많다고 봅니다.
이제까지 쓴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저는 역설적으로 자유민주주의 논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옛날보다 성숙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민주주의란 어떠해야 하는지. 좀처럼 쉽게 답변할 수 없는 물음들을 이 논쟁은 함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한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수준과 같이 간다. 민주주의가 한 사회에 뿌리내리고 질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교육은 그래서 중요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때 민주주의를 이해하고자 하는 지적 욕구도 커지고, 민주주의를 더 이해하게 됨에 따라 사회적 실천도 늘어나 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어떤 현실에 기초를 두고 또 어떤 이론의 안내를 받으면서 사태를 전망하는가를 반추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를 통해 시민적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관한 비판적 논의와 논쟁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좋은 논의와 논쟁은 사태를 명료하게 만들고 문제를 선명하게 부각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해 보다 넓고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참여와 실천을 자극하는 민주주의의 기관차이다. 그리고 이는 사회가 지식인에게 기대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저는 최장집 교수의 말대로 자유민주주의 논쟁이 소모적인 싸움을 멈추고 좋은 논의와 논쟁으로 발전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 대해 '보다 넓고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참여와 실천을 자극하는 '민주주의의 기관차'가 되기를 바랍니다.
첨언 하나. 한편, <조선일보>는 지난해에 발표된 최장집 교수의 논문 내용을 기사화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관련 기사).
"최 교수는 "민주주의의 실제 내용과 성격, 방향은 민주주의만으로 규정될 수 없다"면서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여러 결핍 조건을 깊이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 자유주의가 매우 강력한 유의미성이 있다"고 했다. 또 "자유주의 원리의 실천 여부와는 무관하게 한국은 처음부터 민주주의였고 자유주의였다"며 "진보든 보수든 자유주의적 과제를 해결해가는 데 유능함을 발휘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매우 보편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최근 학계 안팎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 교과서 기술 지침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것을 두고 논쟁이 뜨거웠다. 주로 보수가 찬성 편에, 진보가 반대로 양분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진보 진영의 '간판'으로 꼽히는 최 교수가 진보 진영의 자유주의관을 비판하고 나섬에 따라 논의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반면에, <프레시안>은 "그러나 최 교수의 주장은 자유주의에 대한 진보의 '백기투항'이라기보다는, 자유주의의 '진보적 해석'에 대한 제언에 가깝다. 진보가 자유주의를 '부르주아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폄하하며 거리를 둘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내건 자유주의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분석하여 <조선일보>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쳤습니다(관련 기사).
결국, 최장집 교수가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일보>가 자신의 논문을 잘못 읽었다며 잘라 말함으로써 어느 쪽이 헛다리를 짚었는지 드러났습니다(관련 기사). 십여 년 전에도 최 교수의 논문을 '오독'했던 <조선일보>의 독해력은 아직도 제자리를 맴도나 봅니다.
첨언 둘. 처음 이 글을 쓸 때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정통성 문제 등도 다루고 싶었는데, 너무 길어져서 뺐습니다. 일부 진보적인 언론에서는 뉴라이트가 임정의 법통을 부정하는 듯이 말했지만(관련 기사), 저는 뉴라이트가 임정의 법통을 부정한다고 안 봅니다. 그에 대해서는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첨언 셋. 본문에서 언급한 교과서 자유발행제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면 이기정 씨의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첨언 넷. 이 글의 초안을 쓴 것은 지난해였지만, 이런저런 일이 겹치는 바람에 몇 달이 지나서 완성했습니다. 이 글을 먼저 읽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 벗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덧글
백범 2012/02/12 22:21 # 답글
이승만은 19세기 조선시대 사람입니다. 1870년대에 태어나서 나이 40대가 될때까지 조선왕조 체제에서 살던 사람입니다. 이점은 백범 김구나 우사 김규식, 서재필, 윤치호 등도 마찬가지이고요.애초에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사회에서 태어난게 아님. 그리고 사람의 가치관이라는게 쉽게 바뀌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완벽한 자유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것도 애당초 무리임.
그런 것을 감안하지 않는것 보면 보수나 진보나 다 답없고 편협하며 지가 보고싶은 것만 보려 하는 소아병환자들인 것은 틀림없어 보이네요.
2012/02/14 23:4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解明 2012/02/15 20:44 #
그렇습니다. 그들의 '선의'를 최대한 이해하려고 했는데, 그 부분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서평 위주로 글을 써서 1~2주에 한 번 정도 포스팅할 생각입니다. 계획처럼 될지 잘 모르겠지만요.
나무 2012/02/15 21:25 # 답글
해명님.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잘 지내시지요?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의 논쟁 저도 관심있게 지켜봤습니다.
해명님의 글은 깊이와 논리성을 갖춰서 설득력이 더 강해지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解明 2012/02/16 22:35 #
아직 깁고 더할 곳이 많은 글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