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공간 내에서도 불평등이 존재"하는 오페라와 달리 "평면이고 평등"한 영화 화면은 "어느 위치에서 보든지 큰 차이가 없다"라고 여기는 언어학자 강범모 교수가 영화를 보는 까닭은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이지요. 그러나 강 교수는 남들과 조금 다른 눈으로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스타워즈>에서는 인공언어를, <분닥 세인트>에서는 언어학자와 폴리글롯(polyglot)의 차이를, <화성침공>에서는 기계번역을, <폴링다운>에서는 사역형을, <섬머 오브 샘>에서는 방언을 떠올리며 영화를 보는 강 교수는 천생 언어학자입니다. 2003년에 출간된 『영화마을 언어학교』는 그런 저자의 '직업병'이 남긴 독특한 영화 감상문이자 언어학 입문서입니다.
책의 머리말에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영화 속에 많은 언어의 비밀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한 면에서 영화 감상의 깊이를 더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나아가 언어 자체와 언어학에 대해서도 새로운 이해와 흥미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쓴 강 교수는 강의실에서 이론만 늘어놓는다면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언어학 강의를 대중매체인 영화를 매개로 하여 술술 풀어나갑니다. 언어학이 골방 속에 틀어박힌 책상물림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학문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입니다. 교양서적이 그리 많지 않은 언어학계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이런 시도는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 책에서 저는 몇몇 영화의 설정에서 드러난 '구멍'을 짚어 낸 부분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어를 사용했던 스콜피온 킹과 중기 이집트어를 사용했던 이모텝과 아랍어를 사용하는 현대 이집트인이 언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을 리가 없음에도, <미이라 2>에서 이들이 천연덕스레 서로 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나온다든가 <혹성탈출>에 나오는 원숭이들은 발음 기관이 사람과 다름에도 사람처럼 말을 한다든가 같은 '옥에 티'를 찾아내는 저자에게서 깊은 '내공'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표현을 즐겨 쓰지만, 이탈리아어에서는 바다를 뜻하는 말인 'nave'가 여성 명사이고, 항구를 뜻하는 말인 'asilo'가 남성 명사이므로, "남자는 항구, 여자는 배"라는 표현이 더 맞는다는 설명도 흥미로운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우리말에서는 성(性)이 문법 범주가 아니므로 저자의 설명은 난센스에 가까운 우스갯말이지만, 언어마다 다른 특징을 지녔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번역의 어려움을 다룬 내용은 언어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관심을 두고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번역하기 쉽지 않은 외국어의 방언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라는 문제부터 직역하면 그 뜻이 제대로 살지 않는 제목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문제까지 외국 영화를 들여올 때 부딪힐 이런저런 문제를 다룹니다. 일례로 저자는 '踊る大捜査線'을 그대로 직역한 '춤추는 대수사선'보다는 '오리무중 수사중', '갈팡질팡 수사망', '수사는 오리무중', '수사는 갈팡질팡' 등이 더 알맞은 제목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마이 페어 레이디>처럼 언어학자가 주인공으로 나오거나 언어 문제를 중심 주제로 다룬 영화는 그리 많지 않기에 이 책에서 시도한 영화와 언어학의 연결은 조금 느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고스트 앤 다크니스>에 나오는 사자의 울음소리를 화두로 해서 언어의 자의성을 설명하지만, 단어의 소리와 뜻 사이에 어떤 필연적이고 자연적인 관계가 없는 것처럼, 꼭 <고스트 앤 다크니스>라는 영화로 언어의 자의성을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동물 울음소리가 나오는 영화 가운데 아무것이나 골라도 괜찮으니까요.
또 저자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서 '삶, 죽음, 마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며, 이 단어들을 언어학의 여러 관점에 따라 분류하면서 품사의 개념을 설명하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서 저자처럼 생각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책에 실린 몇몇 글에서 영화가 언어학의 특정 개념이나 지식을 소개하기 위한 단순 소재에 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물론 영화 평론가가 아닌 저자에게 제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책의 중심은 영화가 아닌 언어이니까요. 독자에 따라서는 저자의 시도가 충분히 가치가 있고 매력적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책에 나온 언어학 강의가 영화의 '곁가지'보다 '줄기'에 '접목'했다면 더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습니다.
영화 감상문과 언어학 입문서 사이에서 조금 어정쩡하게 선 『영화마을 언어학교』의 모호한 성격은 뒤에 나온 『언어』에서 어느 정도 보완됩니다. '풀어쓴 언어학 개론'이라는 부제를 단 『언어』는 각 장 속의 모든 절 끝에 '영화 + 언어'라는 난을 둬 『영화마을 언어학교』의 성과물을 상당수 계승했는데, 일반적인 감상 내용은 거의 빼고 본문의 이론과 맞물려 언어학 개설서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나타냅니다. 『영화마을 언어학교』는 현재 절판되어 서점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우므로 그 내용이 궁금하다면, 『언어』를 대신 읽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입니다.
첨언 하나. 『언어』는 2010년에 개정 3판이 나왔습니다.
책의 머리말에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영화 속에 많은 언어의 비밀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한 면에서 영화 감상의 깊이를 더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나아가 언어 자체와 언어학에 대해서도 새로운 이해와 흥미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쓴 강 교수는 강의실에서 이론만 늘어놓는다면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언어학 강의를 대중매체인 영화를 매개로 하여 술술 풀어나갑니다. 언어학이 골방 속에 틀어박힌 책상물림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학문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입니다. 교양서적이 그리 많지 않은 언어학계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이런 시도는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 책에서 저는 몇몇 영화의 설정에서 드러난 '구멍'을 짚어 낸 부분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어를 사용했던 스콜피온 킹과 중기 이집트어를 사용했던 이모텝과 아랍어를 사용하는 현대 이집트인이 언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을 리가 없음에도, <미이라 2>에서 이들이 천연덕스레 서로 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나온다든가 <혹성탈출>에 나오는 원숭이들은 발음 기관이 사람과 다름에도 사람처럼 말을 한다든가 같은 '옥에 티'를 찾아내는 저자에게서 깊은 '내공'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표현을 즐겨 쓰지만, 이탈리아어에서는 바다를 뜻하는 말인 'nave'가 여성 명사이고, 항구를 뜻하는 말인 'asilo'가 남성 명사이므로, "남자는 항구, 여자는 배"라는 표현이 더 맞는다는 설명도 흥미로운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우리말에서는 성(性)이 문법 범주가 아니므로 저자의 설명은 난센스에 가까운 우스갯말이지만, 언어마다 다른 특징을 지녔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번역의 어려움을 다룬 내용은 언어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관심을 두고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번역하기 쉽지 않은 외국어의 방언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라는 문제부터 직역하면 그 뜻이 제대로 살지 않는 제목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문제까지 외국 영화를 들여올 때 부딪힐 이런저런 문제를 다룹니다. 일례로 저자는 '踊る大捜査線'을 그대로 직역한 '춤추는 대수사선'보다는 '오리무중 수사중', '갈팡질팡 수사망', '수사는 오리무중', '수사는 갈팡질팡' 등이 더 알맞은 제목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마이 페어 레이디>처럼 언어학자가 주인공으로 나오거나 언어 문제를 중심 주제로 다룬 영화는 그리 많지 않기에 이 책에서 시도한 영화와 언어학의 연결은 조금 느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고스트 앤 다크니스>에 나오는 사자의 울음소리를 화두로 해서 언어의 자의성을 설명하지만, 단어의 소리와 뜻 사이에 어떤 필연적이고 자연적인 관계가 없는 것처럼, 꼭 <고스트 앤 다크니스>라는 영화로 언어의 자의성을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동물 울음소리가 나오는 영화 가운데 아무것이나 골라도 괜찮으니까요.
또 저자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서 '삶, 죽음, 마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며, 이 단어들을 언어학의 여러 관점에 따라 분류하면서 품사의 개념을 설명하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서 저자처럼 생각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책에 실린 몇몇 글에서 영화가 언어학의 특정 개념이나 지식을 소개하기 위한 단순 소재에 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물론 영화 평론가가 아닌 저자에게 제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책의 중심은 영화가 아닌 언어이니까요. 독자에 따라서는 저자의 시도가 충분히 가치가 있고 매력적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책에 나온 언어학 강의가 영화의 '곁가지'보다 '줄기'에 '접목'했다면 더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습니다.
영화 감상문과 언어학 입문서 사이에서 조금 어정쩡하게 선 『영화마을 언어학교』의 모호한 성격은 뒤에 나온 『언어』에서 어느 정도 보완됩니다. '풀어쓴 언어학 개론'이라는 부제를 단 『언어』는 각 장 속의 모든 절 끝에 '영화 + 언어'라는 난을 둬 『영화마을 언어학교』의 성과물을 상당수 계승했는데, 일반적인 감상 내용은 거의 빼고 본문의 이론과 맞물려 언어학 개설서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나타냅니다. 『영화마을 언어학교』는 현재 절판되어 서점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우므로 그 내용이 궁금하다면, 『언어』를 대신 읽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입니다.
첨언 하나. 『언어』는 2010년에 개정 3판이 나왔습니다.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