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은 몽골어에서 온 말일까? 언어(言語)

송악산으로도 불리는 절울이오름의 정상 분화구 주위 풍경, 출처 경향신문

제주도에서 기생 화산을 가리키는 말은 '오름'입니다. 한국지리를 공부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말이지요. 그런데 '오름'이 산을 가리키는 몽골어의 'уул'에서 왔다고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종합일간지인 <문화일보>뿐만 아니라(관련 글), 제주의 한 케이블 방송에서도 그런 주장을 했습니다(관련 뉴스). 'уул'를 국제 음성 기호(IPA)로 옮겨 적으면 [uːl]인데, 얼핏 봐도 '오름[orɯm]'과 비슷한 형태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가라'나 '구렁'처럼 제주어에는 몽골어에서 빌린 말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오름이 멀리 몽골에서 건너온 말일 것이라는 심증을 더욱 굳힙니다.

하지만 고대 국어 자료를 살펴보면 '오름'이 꼭 몽골어에서 왔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신라 시대에 융천사(融天師, ?~?)가 지었다고 하는 향가 <혜성가(彗星歌)>를 보면 '三花矣岳音見腸烏尸聞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향가를 해독했던 학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 구절에서 '岳音'이라는 어휘를 '오름'으로 읽었습니다. 향찰에서 '音'은 'ㅁ'을 나타내는 음독자입니다. '夜音'은 '밤'으로, '雲音'은 '구룸(>구름)'으로, '憂音'은 '시름'으로 읽을 수 있는데, 이것을 보면 향찰에서 '音'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岳音'은 단어의 마지막 음절 끝소리가 'ㅁ'으로 끝나면서 '山'이나 '岳'을 뜻하는 어떤 단어를 나타낸 표기일 것입니다.

중세 국어에서 산을 가리키는 말인 '뫼ㅎ'는 음절의 끝소리가 'ㅁ'이 아니므로 '岳音'으로 적을 수 없습니다. 한자어인 '산'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러나 제주어의 '오름'은 앞에서 말한 조건에 모두 들어맞습니다. '岳音'을 '오름'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양주동 선생은 '오름'을 동사 '오르다'의 명사형에서 나온 말일 것으로 추측했는데, 이는 명사 '사람'을 동사 '살다'에서 파생한 말로 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처럼 한국어 속에 몽골어 차용어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오름'은 이미 이 땅에 존재했던 말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름'이 몽골어 'уул'에서 왔다는 주장은 재고해야 합니다. 물론 형태적으로 유사한 두 낱말이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을 수는 있겠으나, 그것을 증명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중앙어에서 사라진 말이 바다 건너 멀리 제주도의 말에 흔적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자료가 부족한 탓에 그 까닭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오름'을 밀어내고 중앙어의 자리에 올랐던 '뫼ㅎ'는 한자어인 '산'에 밀려 사라진('멧돼지'나 '멧새'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요) 반면에, 변방으로 밀려났던 '오름'은 오히려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올레를 지나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놀랍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첨언 하나. 몽골어 'уул'의 IPA 표기는 '위키낱말사전'을(바로 가기), 제주어 '오름'의 IPA 표기는 '우리말 배움터'의 '표준발음 변환기'를 참고했습니다(바로 가기).

첨언 둘. 몽골어 차용어인 '가라'는 털빛이 까만 말을, '구렁'은 털빛이 밤색인 말을 가리킵니다. 이들 낱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도'가라말'과 '구렁말'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첨언 셋. '三花矣岳音見腸烏尸聞古'를 현대어로 풀이하면 '세 화랑의 산 보신다는 말씀 듣고'가 됩니다. 현대어 풀이는 김완진 교수의 것을 따랐습니다.

첨언 넷. '岳音'의 재구형은 학자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양주동 선생처럼 '오름'에서 '름'의 모음을 아래아(ㆍ)로 본 학자도 있고, 김완진 교수처럼 '오롬'으로 본 학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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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페이토 2011/07/01 00:29 # 답글

    '일반인'인 저도 막연히 '오르다'에서 온 말이 아닐까 추측했었는데. 여하튼 일전에 제주도 여행 때 본 오름의 모습은 화려하진 않지만 참으로 정감가는 모습이었어요.ㅎ
  • 解明 2011/07/01 18:44 #

    감각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우연히 자료 발견하기 전까지 '오름'의 기원이나 형성에 대해서 의식조차 못 했었거든요. 저는 제주도에 간 적이 없어서 나중에 꼭 가고 싶습니다.
  • 朴下史湯 2011/07/02 03:16 # 답글

    우왕 향찰 재밌네요ㅎㅎ 세 화(랑)의 오름 보자오시(ㄴ다고) 듣고 가 되는건가요?
  • 解明 2011/07/04 00:49 #

    '見腸烏尸'은 '보-시-오-ㄹ'입니다(양주동 선생은 '보샤올'로 읽었고요). '腸'는 주체 높임 선어말어미 '-시-'입니다.
  • 朴下史湯 2011/07/02 03:34 # 답글

    살다가 사ㄹ·ㅁ이 됐으니 오르다도 오ㄹ·ㅁ일 거 같다고 생각하는 1人
    큰산 악 자의 큰 산을 오르막이라고 새길 수도 있으니, '오르막'에도 岳音이 아직 남아있는걸지도요.ㅎㅎ
  • 解明 2011/07/04 00:49 #

    중세 국어에서 '오르다'는 '오ㄹㆍ다'이기도 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사람'을 '살-+ㅇㆍㅁ'으로 분석했고요. 사전에서는 '오르막'을 '오르-+-막'으로 분석했더군요. 아래아가 들어간 말은 부득이하게 풀어쓰기를 했습니다.
  • 朴下史湯 2011/07/02 03:34 # 답글

    그리고 지금은 새벽 세시 반....
  • 애쉬 2011/07/04 13:27 # 답글

    오름이란 명사에서 오르다란 동사가 나왔을 가능성도 있고요...

    오름이 몽골계통의 언어에서 원나라 이전, 삼국시대보다 더 이전에 들어왔을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두가지 가설이 다 근거도 없고 확률도 희박한 추측이지만요 ^^

    한반도의 우리들과 극동아시아 툰드라 지대의 유목민족, 일본 열도의 정주민인 아이누족, 몽골을 위시한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들.... 언어와 종교를 통해보면 연관관계가 많아보입니다.

    단지 고려시대 원나라의 영향으로 생각하기엔 좀 뿌리깊게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입니다.

    고려시대 이전 고대에서 극동아시아 유목민족과의 문화교류(혹은...인근 부족이였을지도;;;) 가능성은 막아놓지 말고 탐색해보는 것이 좋겠다봅니다.^^

    흥미로운 주제의 글 감사합니다^^ 해명님
  • 解明 2011/07/04 18:57 #

    '사람'이라는 대상을 가리키는 명사가 먼저 나오고 '살다'라는 행동을 나타내는 동사가 뒤에 나온 것이지 그 반대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 성격의 문제라서 확언하기 어렵군요.

    그리고 본문에서 'уул'와 '오름'이 동계어일 가능성은 있지만, 자료 부족 때문에 증명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산악 지형이 발달한 한반도에서 '산'을 가리키는 말을 굳이 외국어에서 차용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고요.
  • 애쉬 2011/07/04 20:35 #

    네.. 닭과 달걀의 문제 맞네요^^

    제가 댓글 쓴 취지는 'уул'와 '오름'이 동계어일 가능성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한국어와 몽골어의 접촉면을 원나라-고려 시대로 생각하는 것 보다 넓게 생각해봐야겠다는 의도였습니다.^^ 한국 문화 요소요소에 남아있는 비슷한 문화가 한 시대에 집중적으로 들어왔다고 보기엔 다양하게 남아있는 것 같아서요

    산악지형인 한반도에서 산을 가리키는 어휘를 차용했을까 싶잖다는 의구심은 자연스럽네요

    오르다는 말을 더 연구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제주도의 오름이 '단기간에 걸쳐 땅이 올라왔다는 뜻' 에서 만들어졌다면 제주도어민들의 지질학적인 안목이 대단하다고 볼 수도있겠어요^^ (주변 지형을 살펴서 이런 지식을 얻는 것이 당시로써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리라 생각됩니다.)
  • 解明 2011/07/04 20:41 #

    그렇지만 '산'은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한자어를 차용한 것이지요. ^-^;
  • 애쉬 2011/07/04 20:49 #

    네^^ 山을 가리키는 어휘는 '뫼' 혹은 '메' 겠지요
    산을 가리키는 어휘는 한자어가 들어오기 전 부터 사용되고 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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