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8일
폭력의 찬미와 야만의 교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옛날에 학교에서 자신을 체벌한 은사에게 원한을 품고 살해했다는 뉴스가 나왔던 일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가해자는 정신이상자였던 것으로 드러나 피해자만 억울하게 되었지만(관련 기사), 이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학창 시절에 교사로부터 체벌을 받았던 일을 졸업하고나서도 자세히 기억하며 체벌 교사에게 '진짜' 원한을 품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사가 과거 '군사부일체'와 같은 우러름의 대상으로 떠받들어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학생에게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모델' 역할은 해야 할 텐데 체벌은 그런 기대마저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나라에서 체벌의 '악몽'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도 중학교에 다닐 때 만난 어떤 선생을(차마 '님'이라는 말을 못 붙이겠다)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그 선생은 학교에서도 가장 무섭기로 이름난 사람 가운데 하나였기에 그 선생 수업만 되면 온 교실이 한 시간 동안 쥐죽은 듯 조용했다. 마침 그 선생이 맡은 과목이 한자인지라 무슨 서당에 와 있는 기분이 들기까지 했는데, 내가 그 선생을 안 좋게 본 가장 큰 까닭 가운데 하나는 무엇보다 학생이 잘못을 저지르면 인정사정 없이 따귀를 때렸기 때문이다. 교실은 물론이고 복도에서도 그런 체벌을 행사하며 공포심을 유발했는데, 진짜 '짝! 짝!' 소리가 나도록 따귀를 얻어맞은 학생은 볼이 빨갛게 부어올라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사실 내가 그 선생한테 맞았던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맞았던 것 같은 착각이 들고는 한다. 그만큼 체벌은 맞는 학생은 물론이거니와 맞는 것을 보는 학생에게도 그리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오늘 <조선일보>를 보니 한림대학교의 김인규 교수라는 사람이 쓴 ''체벌금지' 때문에 망가지는 교실'이라는 칼럼을 보게 되었다(관련 칼럼). 아마도 김인규 교수는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교실 붕괴'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영국과 미국과 같은 선진국(그런데 이 두 나라가 교육에서도 진짜 '선진국'인지는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이 체벌을 다시 도입하여 다수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려고 하는데, 쓸 데 없이 '인권의식'을 들먹이는 전교조 때문에 체벌 허용이 안 되고 있다는 게 김인규 교수의 불만이었다.
그리고 김인규 교수는 아주 재미있는 제안 하나를 우리에게 던졌다. 학교와 학부모에게 체벌금지제와 체벌허용제를 선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그리고 이런 제안 속에 '전교조 대 반전교조'라는 틀을 애써 집어넣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이제 '체벌'도 시장에 맡기겠다니, 이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사랑의 매'라고 이름붙인 폭력을 향한 찬미. 학교자율화 만세다.
아무튼 '이상주의자가 아닌지라 내 아이를 체벌허용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현실주의자 아버지를 둔 아이는 얼마나 행복할지 모르겠다. 설마 나중에 선생님한테 눈앞에 별이 보일 정도로 맞고도 '아, 우리 아버지는 미국의 '실증연구'에 바탕을 둔 '현실주의적' 판단에 따라 나를 이 학교에 보내서 체벌을 받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려고 하셨으니까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이렇게 맞아도 별로 불만이 없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나라에서 체벌의 '악몽'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도 중학교에 다닐 때 만난 어떤 선생을(차마 '님'이라는 말을 못 붙이겠다)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그 선생은 학교에서도 가장 무섭기로 이름난 사람 가운데 하나였기에 그 선생 수업만 되면 온 교실이 한 시간 동안 쥐죽은 듯 조용했다. 마침 그 선생이 맡은 과목이 한자인지라 무슨 서당에 와 있는 기분이 들기까지 했는데, 내가 그 선생을 안 좋게 본 가장 큰 까닭 가운데 하나는 무엇보다 학생이 잘못을 저지르면 인정사정 없이 따귀를 때렸기 때문이다. 교실은 물론이고 복도에서도 그런 체벌을 행사하며 공포심을 유발했는데, 진짜 '짝! 짝!' 소리가 나도록 따귀를 얻어맞은 학생은 볼이 빨갛게 부어올라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사실 내가 그 선생한테 맞았던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맞았던 것 같은 착각이 들고는 한다. 그만큼 체벌은 맞는 학생은 물론이거니와 맞는 것을 보는 학생에게도 그리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오늘 <조선일보>를 보니 한림대학교의 김인규 교수라는 사람이 쓴 ''체벌금지' 때문에 망가지는 교실'이라는 칼럼을 보게 되었다(관련 칼럼). 아마도 김인규 교수는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교실 붕괴'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영국과 미국과 같은 선진국(그런데 이 두 나라가 교육에서도 진짜 '선진국'인지는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이 체벌을 다시 도입하여 다수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려고 하는데, 쓸 데 없이 '인권의식'을 들먹이는 전교조 때문에 체벌 허용이 안 되고 있다는 게 김인규 교수의 불만이었다.
그리고 김인규 교수는 아주 재미있는 제안 하나를 우리에게 던졌다. 학교와 학부모에게 체벌금지제와 체벌허용제를 선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그리고 이런 제안 속에 '전교조 대 반전교조'라는 틀을 애써 집어넣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이제 '체벌'도 시장에 맡기겠다니, 이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사랑의 매'라고 이름붙인 폭력을 향한 찬미. 학교자율화 만세다.
아무튼 '이상주의자가 아닌지라 내 아이를 체벌허용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현실주의자 아버지를 둔 아이는 얼마나 행복할지 모르겠다. 설마 나중에 선생님한테 눈앞에 별이 보일 정도로 맞고도 '아, 우리 아버지는 미국의 '실증연구'에 바탕을 둔 '현실주의적' 판단에 따라 나를 이 학교에 보내서 체벌을 받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려고 하셨으니까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이렇게 맞아도 별로 불만이 없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 by | 2008/12/18 21:21 | 세설(世說) | 트랙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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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서머힐은 문제아를 어떻게 다루는가?
폭력의 찬미와 야만의 교실어제 <조선일보>에 실렸던 김인규 교수의 글을 놓고 조금 긴 말을 늘어놓았다. 다수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고 '교실붕괴'를 막으려면 '체벌허용제'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김인규 교수의 생각에 나는 부정적 견해를 내놓았다. 그 까닭은 이렇다. 첫째, '교실붕괴'의 원인이 진짜 '체벌금지' 때문인가? 둘째, 체벌을 허용하면 학습권이 보호되는가? 셋째, 학습권을 보호하는 가장 효과적 교육방법이 체벌밖에 없......more
고등학생으로서.. 참 답답합니다.. 더 가슴아픈건.. 아이들이 저항을 안합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복종합니다. 정상적이라면 들고 일어나야되는데 말이죠. 권위주의를 이렇게 자연히 학습합니다..
교내에서... 직접적인 체벌(본문에서 나오는 따귀치기 등;)이나 간접적인 폭력(두발규제 등)을 없애기 위해선. 교사, 학부모, 학생. 세 사람의 긴밀한 협조와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교사들은 어렸을 적부터 저런 직간접적인 체벌과 억압 속에 살아왔으니 자신들이 저러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기고... 학생들은 위 페이토님 말처럼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복종하고..
문제는 학부모들인데. 학부모들은 오늘날 자식들이 교내에서 억압적인 문화 속에 자란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식들이 공부 안한다는 사실엔 엄청난 거부 반응을 보이죠...
무슨 말이냐면. 두발 규제를 풀거나 교복을 자율화하면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느라 공부를 안하게 된다... 고 생각하니. 그것이 억압적이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막상 그것을 폐지하거나 완화하려는 움직임엔 상당히 회의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두발 규제를 완화하자는 움직임이 교내에서 있었고 그것이 거의 실현되려는데 학부모층이 강력 반발해 결국 없었던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체벌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좀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따귀를 치거나 발로 복부를 차거나 하는 체벌 행위는 사실상 폭력이죠. 다만 분명한 것은.. 현 상황에서 교사가 학생을 통제할 수단이 '체벌' 밖에 없는 것도 분명한 현실입니다.
혹자는 학생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교내에 발생하는 왕따나 학급 폭력, 도둑질 등의 문제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말'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체벌을 폐지하고 싶다면 체벌을 대체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합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벌점제. 그러니까, 퇴학이나 3일 정학 등의 패널티를 주고 이것이 계속 학생 기록부에 남기는건데 과연 학부모나 선생, 심지어 학생들도 이걸 수용할 지 의문입니다. 당장 '대학에 가는데 패널티가 된다' 니까요...
체벌 폐지 논쟁을 보면서 제가 느끼는 것은... 찬성론자들은 교사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해 학생들이 억압 받는 사례만 나열하고 반대론자들은 지나치게 학생의 기가 쎈 학교에서 학급 붕괴의 사례만 나열합니다.
두가지 모두 존재하는게 한국 교실 문화의 현주소거든요. 그렇다면 두가지 사례 모두 통합하고 적용할 수 있는... 체벌을 대신할 뭔가가 필요합니다. 학생을 패지 않고서 말을 듣지 않는 문제아를 훈육할 수 있는 것 말이죠.
뭐 그러다보니 결국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죠-_-;;;
학생이 교실 붕괴라면 교사도 교실 붕괴라고 봐요.
물론 '다수의 성실한 일부' 제외.
제 어린 시절을 돌아봐도, 교사에게 또는 부모나 형제에게 당했던 유언무언의 폭력이 정당했다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늘 억울했지요.
아무리 다양성이 좋다 하더라도, 세상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아니 인정해서는 안될 것들이 있고, 그중 한 가지가 바로 폭.력.이죠.
초록불/ 그쪽에서 하는 말대로 맞아야지 정신 차릴 것 같습니다. (야!)
OK牧場/ 뭐든지 시장의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라고나 할까요?
야스페르츠/ 제대로 하는 것도 없이 교육, 경제, 정치, 사회, 학술, 종교를 가리지 않고 다 쑤시고 다니면서 갈등만 키워놓으니 미치겠습니다.
페이토/ 다수의 학생은 '현실'에 '순응'하여 '침묵'하고 있지만(저도 그랬었습니다), 그래도 옛날과 견주어 보면 요즘은 적지 않은 학생이 깨어서 학교의 부조리에 '저항'하고 있지요. 그래서 언젠가는 학생이 교육의 주체가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숫자/ 아주 긴 덧글을 남겨주셨군요. 고맙습니다. '학생을 패지 않고서 말을 듣지 않는 문제아를 훈육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대안학교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서머힐을 세운 A. S. 닐의 사상을 참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아래 cherry 씨가 언급한 내용이 바로 그런 내용 가운데 하나인데 나중에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김인규 교수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사랑' 타령이냐고 말하겠지만, 본질적 해결을 학생을 '사랑'하고 '자유'를 돌려주는 것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실제로 닐은 서머힐에서 그런 일을 해냈고요.
9625/ 그런 일이 있었군요.
cherry/ 맞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