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봉했었던 영화 <쌍화점>을 보면 왕후(송지효 분)가 <가시리>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에서 왕후는 『악장가사』와 『시용향악보』에 적힌 것과 같은 노랫말로 노래합니다. 영화 속에서 왕후는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는 오늘날 우리처럼 현대국어로 말을 하면서도 노래를 부를 때는 갑자기 중세국어를 쓰는 것이지요. 물론 대다수 관객은 옛말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모순쯤은 일종의 컨벤션으로 생각하고 너그러이 넘어갔을 겁니다.
사실 <가시리>는 노랫말이 어렵지 않아서 옛말로 부르나 이젯말로 부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노랫말에서 중세국어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을 꼽으라면 아마도 '날러는 엇디 살라
고'라는 구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서 '엇디'는 오늘날의 '어찌'와 같은 말인데, 우리말에서 아직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의 형태를 지녔습니다.
구개음화란 쉽게 말하면, 구개음이 아닌 소리가 구개음으로 바뀌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일출(日出)을 뜻하는 말을 '해돋이'라고 적지만 소리를 낼 때는 [해도지]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굳히다'는 '굳히다'라고 쓰면서도 [*구티다]가 아닌 [구치다]라고 소리 내지요. 다시 말해서 'ㄷ'과 'ㅌ'은 치조음이지만 모음 'ㅣ'를 만나면 구개음인 'ㅈ'과 'ㅊ'으로 바뀝니다. 가끔 인터넷에서 몇몇 사람이 '굳이'를 '구지'라고 적기도 하는데, 이는 구개음화가 일어나는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탓입니다.
영화 <쌍화점>, 출처 Daum 영화
이처럼 구개음화는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중세국어에서는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옛사람들이 '조선'을 '됴션'으로, '부처'를 '부텨'로 적었던 것은 그들이 유별나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소리 냈기 때문이죠. 그러면 구개음화는 언제 처음 일어났을까요? 유희(柳僖, 1773~1837)가 쓴 『언문지』에는 구개음화에 얽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의 습관에 '댜, 뎌'를 '쟈, 져'와 같게 발음하고 '탸, 텨'를 '챠, 쳐'와 같게 발음한다. 이는 안이(按頥 : 중성이 ㅑ, ㅕ, ㅛ, ㅠ, ㅣ 등인 자모) 중에서 이들(댜, 뎌, 탸, 텨)은 어렵고 저들(쟈, 져, 챠, 쳐)은 쉽기 때문이다. 지금 오직 관서 사람들은 '天 텬'과 '千 천'을 다르게 발음하고 '地 디'와 '至 지'를 다르게 발음한다. 또 정씨 어른께서 그 고조의 형제분이 한 분은 '知和(디화)'요 한 분은 '至和(지화)'였는데 그 당시에는 아직 이 두 이름이 혼동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므로 '디'와 '지'의 혼동은 그리 옛날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바 있다.
(如東俗댜뎌呼同쟈져 탸텨呼同챠쳐 不過以按頥之此難彼易也 今唯關西之人 呼天不與千同 呼地不與至同 又聞鄭丈言 其高祖昆弟 一名知和 一名至和 當時未嘗疑呼 可見디지之混 未是久遠也)
유희가 말하는 정씨 어른은 그의 스승인 정동유(鄭東愈, 1744~1808)를 가리키는데, 정동유의 고조부가 살아있었을 때는 아직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를 17세기 중엽 전후라고 한다면, 구개음화는 그보다 조금 뒤인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동안에 일어났다고 볼 수 있겠죠. 이로써 구개음화는 모음 'ㆍ'의 소실, 이중모음의 단모음화, 원순모음화, 전설모음화 등과 함께 근대국어의 특징을 이루는 음운변화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이렇게 영화에서 중세국어의 흔적을 희미하게 느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라틴어와 아람어를 써서 예수 당대의 삶을 되살리고자 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우리에게도 모든 대사에 옛말을 쓴 영화가 나오면 어떨까 하고 말이죠. 물론 남아있는 중세국어 자료가 입말보다는 글말에 가깝고 불경을 언해한 것이 많아서 대사에 쓸만한 말을 찾기가 쉽지 않겠지만요.
사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