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글날이 모레 앞으로 다가왔네요. 오늘은 오랜만에 모교에 가서 필요한 서류를 찾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깐 광화문 광장에 들렸는데, 한글날에 맞춰서 공개될 세종대왕 동상을 봤습니다(비록 흰 천에 가렸지만). 광화문 광장을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었지만, 제 눈에는 광화문 광장의 넓이에 견주어 세종대왕 동상은 지나치게 커 보였습니다. 광화문 광장이라는 곳이 역사를 '액세서리'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12.23'이니 '224,537'이니 하는 숫자로 나타난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깊은 뜻으로 다가올까요? 광장의 미덕은 '채움'보다는 '비움'에 있을 터인데, 위에 계신 분들의 생각은 아무래도 좀 다른가 봅니다. 조선의 법궁(法宮)이었던 경복궁과 이도(세종)와 이순신의 동상이 일직선으로 늘어선 게 그분들 눈에는 꽤 그럴듯하게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에요.
아무튼, 동상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올해 한글날은 세종대왕 동상 공개로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끌 것 같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동상이 손에 든 게 다름 아닌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하더군요. 우리가 익히 들어서 잘 아는 이른바 어제 서문('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서(國之語音 異乎中國)'로 시작하는)도 『훈민정음 해례본』에 있죠. 뒤에 조선 조정은 어제 서문을 언해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훈민정음 언해본』이지요.
『훈민정음 언해본』, 출처 위키백과
옛날에 김차균 교수가 『훈민정음 언해본』 가운데 어제 서문만 원문 그대로 강독한 음성 파일을 인터넷에서 찾아 들은 일이 있었는데, 시쳇말로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이제 와서 다시 들으니 성조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우리말이지만 우리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죠. 이제는 우리가 쓰지 않는 소리가 나오고, 오늘날에는 단모음으로 소리 내는 것도 옛날에는 이중모음으로 소리 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죠.
한글날이 되면 보통 문자로서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찬사를 하거나 우리의 언어 실태(이를테면 '외계어' 같은)에 대해 반성을 하는 일이 많은데, 옛날에 조선인들은 어떤 말을 썼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음성 파일을 듣다 보면 우리말이 참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어쩌면 김차균 교수를 따라 자신도 모르게 '세종 어제 훈민정음'을 중얼거리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겠죠. 이게 뜻밖에도 묘한 중독성이 있거든요.
Hunminjeongeum.mp3